기발표작/들메 천년의 바람 2020. 9. 14. 14:19
유난히 긴 장마가 지나고 때늦은 여름 더위가 한창이다. 계절에 맞춰 제 기세를 펼치지 못했던 아쉬움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탓일까, 밤낮 가리지 않고 더위가 맹렬하다. 집에 드나들면서 담벼락을 엉켜 붙들고 산발인 듯 피어있는 능소화를 본다. 꽃 색이 진한 분홍으로 찬란하고 줄줄이 달린 꽃봉오리가 양반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이름처럼 하늘을 향해 도도하다. 이른 장마 때부터 하나둘 꽃봉오리를 내더니 이 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피고 지기가 계속이다. 같은 시기에 첫 꽃을 피웠지만 이미 꽃잎이 떨어지고 잎만 무성한 산수국에 비하면 화려함을 즐기는 양반의 꽃답다. 시골의 한적한 아파트라 눈길 미치는 곳곳에 공터가 있다. 그 공터에는 계절마다 꽃을 피운 뒤 열매를 맺는 식물들이 들어차 있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이 화단..
기발표작/들메 천년의 바람 2014. 8. 10. 21:04
흔히 얼굴이 못생긴 사람을 호박꽃이라 합니다. 하지만 호박꽃은 우리가 빗대는 것처럼 추한 모습이 아닙니다. 얼핏 지나치지 않고 걸음을 멈추어 가만히 바라보면 샛노란 원색의 색감과 커다란 통꽃으로 이루어진 모습은 다른 꽃에서는 볼 수 없는 넉넉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골 중년 아낙의 매무새처럼 구수한 아름다움이라 표현할까요? 열대 및 남아메리카가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도입하여 재배한 호박. 호박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핍니다. 수꽃은 원줄기에서 길게 꽃대를 낸 후 그 위에 달리며 꽃 안쪽 중심에 수술이 돋아있는 반면 암꽃은 원줄기에 붙어서 피는데 꽃 밑둥에 탁구공만한 호박씨방을 달고 있습니다. 물론 꽃 안쪽에는 긴 수술이 달리지 않고 작고 펑퍼짐한 암술이 돌기처럼 돋..
기발표작/들메 천년의 바람 2014. 8. 10. 20:52
어릴 때, 먹을 것 귀하고 놀이시설이 있던 것도 아닌 시절에는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과 같이 들과 바다로 뛰어나가 노는 일이 다반이었습니다. 쏠쏠한 군것질거리 푼돈을 만들어 주었던 지네를 잡는 일하며, 논주위로 흐르는 개울물에서는 보리밥알을 미끼로 하여 피라미류를 낚아 올리기도 하고 바다에서는 고매기라 불리는 고동을 잡는 일은 어린 날 추억의 대부분입니다. 어느 여름날, 놂에 지쳐 몸에 든 허기를 캐어낸 칡뿌리로 달래다 만난 붉은 빛이 도는 키다리 들꽃. 들녘에 자리한 무덤가에 홀로 피어있던 꽃은 그 나이의 제 키와 얼추 비슷하였고 검은 깨알반점이 촘촘히 박힌 붉은 꽃잎을 뒤로 한껏 말고 수술을 길게 내민 도도하고 정열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땅나리 - 중부이남의 산에서 자라며 적황색 꽃이 땅을 향해 피는데..
기발표작/들메 천년의 바람 2014. 8. 10. 20:40
오랜만에 한라산을 올랐다. 태풍의 영향인지 아래쪽은 아직 후텁지근한 여름날씨가 그대로인데 한라산엔 벌써 가을 냄새가 난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이 흐르는 땀을 빠르게 식혀주고 흐르는 등갈퀴꽃 여럿 품어 안은 계곡 물소리는 벌써 냉냉함을 품었다. △엉겅퀴 사람도 한적한 길, 산행에 딱히 좋은 날이다. 산을 오를 때는 쉼이 많아야 한다. 걸어온 길을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정상만을 향해 올라가는 산행이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중간 중간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그 아래로 펼쳐진 아름다운 산의 모습에 심취하기도 하며 구더기처럼 가득차 머릿속에서 꿈틀거리는 헛된 생각들을 정리하자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 이 또한 같지 않겠는가? 연변에서 온 할머니를 만났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교수를 한다는 아들..
기발표작/들메 천년의 바람 2014. 8. 10. 20:27
숲이 아닌 마을길을 걷다보면 담장위로 탐스러운 꽃다발을 만나게 된다. 장미도 아닌 것이 주홍빛으로 꽃자루에 송이로 달려 간들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눈을 잡아끄는데 다가가보면 능소화다. 능소화는 흔히 풀로 생각들을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중국원산의 낙엽성 덩굴식물로 나무이며 들여온 시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동양적인 정서로 인해 정원수로 많이 가꾸어진다. 능소화는 튼실한 줄기를 꼬며 자라다가 담장을 만나게 되면 줄기의 마디에서 흡반이라 하는 뿌리를 내어 밀착시키고 담을 타고 오른다. 같은 흡반을 내어 담을 타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가지로 담 전체를 완전히 덮어버리는 것과는 달리 능소화는 위를 향해 부채살 모양으로 적당한 가지를 내며 절제된 성장을 보인다. 꽃은 여름에 깔때기 같은 모양으로 꽃대에 열 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