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행수

바닷바람이나 쐬면 좋을까 싶었다. 은근 불편할 정도로 몇 주간 허리가 아팠다. 핑계로 주말마다 집 안에만 머물렀던 탓이다. 주말에 오랜만에 부산에서 내려온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2월 중순, 시기로는 겨울 기세가 등등할 때지만 내내 봄 같은 날씨다. 따뜻한 겨울이 계속되면서 낚시는 비수기다. 작년엔 잦은 비로 농사를 망치더니 올겨울 들어서는 어업에다 타격이다.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기상이변에 농어민들의 시름이 깊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야 하지만 뜻과는 달리 너무 어긋나 바로잡기는 힘들 듯하다.


아픈 허리로 무슨 낚시냐고 말리는 어머니의 말씀을 귀 뒤로 흘리며 포구로 향했다. 썰물 시간대로 접어드는 바닷물은 포구 선착장 바닥쯤에서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사리물때라 그렇다. 선착장 위에 손을 걸치고 몸을 늘여 뜨려 힘겹게 배에 올라탄다. 엔진 시동을 걸고 포구를 빠져나간다. 포구를 벗어나니 바람이 세다. 배 앞에서 갈라지며 거칠게 퍼지는 물살이 배 안으로 튀겨온다. 바람을 옆면으로 두고 나아가는 탓이다. 동생이 손짓으로 배 앞머리를 틀라고 하지만 듣질 않았다. 바람에 섞여오는 바닷냄새와 짭짜름한 맛에 기분이 상쾌하다. 전날 미리 아버지께 확인해둔 지점에 배를 멈춘다.
예상은 했지만, 물살은 생각보다 빨랐다. 사리물때, 최고수위까지 들어찼던 바닷물이 급격히 빠지는 탓이다. 빠른 물살은 처음부터 낚시를 방해했다. 줄을 풀어 낚싯대를 내려도 수직으로 가라앉질 않고 바로 물살에 휩쓸려 사선으로 뻗어 나간다. 엎친 데 덮친 격,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샛바람이라 불리는 동풍이다. 겨울철 동풍은 낚시뿐만 아니라 배와 어민들의 안전도 위협한다.

 


겨울에 들어서면서 서귀포시 연안에는 북서풍이 분다. 이 바람은 오후 시간에 동풍으로 바뀐다. 기상청에서 상시로 부는 계절풍인 북서풍의 세기만 예보할 뿐이다. 일상적 바다예보를 믿고 나갔다가 갑작스레 불어닥치는 동풍에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한 번 시작되면 4~5일 간격으로 계속되는 이 바람은 주로 오후 시간대에 집중되는데 정오를 시작으로 저녁 6시까지 불어오다가 잠잠하게 그친다. 아침에 고요하게 잔잔했던 바다가 오후 들어 일시에 하얀 물거품으로 뒤덮이며 파도가 세차게 일면 이 동풍 탓이다. 그래서 겨울철이 되면 오후 바다기상에 항시 유의해야 한다. 특히 파도에 약한 작은 배를 탈 때는 동풍의 세기와 파도의 상태, 높이를 수시로 점검하며 비상시 즉시 귀항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낚시해야 한다.
빠른 물살에 점점 강해지는 동풍이 더해지면서 바다는 삼각파도를 불규칙하게 만들어내며 거칠어진다. 낚싯배가 빠르게 서쪽으로 밀려난다. 물때 또한 빠른 썰물 때 때인지라 내려진 낚싯줄이 이른바 ‘연날리기’ 식으로 바닷속에서 끌린다. 바람의 방향과 조류의 방향이 다르니 끌리는 정도가 심하다.


봉돌을 더 무겁게 바꿨다. 끌림이 조금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낚시는 어렵다. 몇 번의 내리고 올림을 반복하다가 아예 낚싯대를 접었다. 바람이 멈추던지 썰물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자는 판단에서다. 아들도 재미가 없는지 낚싯대를 배 바닥에 내려놓고는 드러누워 버린다. 어부인 동생만이 바람과 물살의 정도에 따라 점점 무거운 봉돌로 바꿔가면서 낚시를 한다. 시간이 두어 시간 흐르고 늦은 오후가 되자 동풍은 점차 잦아들었다. 파도도 따라 잔잔해져서 낚시를 다시 시작했지만, 입질은 여전히 없다.

 


동풍이야 예상치 못했다 해도 시간을 택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이 시기 낚시는 밀물 때 전후 아니면 잡기가 어려울 거라는 말씀을 아버지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리물때에 썰물 때까지 겹쳤으니 입질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거친 겨울 동풍까지 만났으니 모든 조건이 최악인 상황이다.


썰물 때가 끝나고 잠깐의 정조기(밀물 썰물이 뒤바뀌는 시간에 발생하는 물흐름의 정지상태)가 이어진 후 다시 낚시채비를 내린다. 그러나 해는 서편 바다 수평선에 다가가고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질 않는다. 신중과 정성을 다해 고패질해본다. 딱 한 마리만이라도 걸려봐라, 속으로 수없이 바라보지만 역시 마찬가지. 낚싯바늘은 물속에서 혼자만 춤추고 있다. 해는 수평선에 걸쳐지기 무섭게 제모습을 감춰간다. 낚시를 접어야 할 시간이다. 10분만 더 해보자는 동생의 애원에도 엔진 시동을 건다. 나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 더 어두워지면 포구로 가는 길이 위험하다. 썰물 때에는 간출여라 하여 평소 보이지 않던 물속의 수중암반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 세월 같은 바다에서 생활하는 어부들이야 경험적으로 어두운 바다에서도 제 항로를 찾는다고 하지만 연안 지형에 익숙지 않은 초보자로서는 사고의 위험이 크다. 특히 밤바다에서 항로를 벗어났다가 간출여에 부딪히면 목숨까지 위태롭다.

 


어슴푸레 밀려오는 어둠을 뚫고 포구로 귀항을 마쳤다. 어머니께서 선착장에 나와 계신다. 밧줄을 매어 배를 고정한 후 낚시 짐을 들고 선착장에 올라온다. "바당 쎈디 괴긴 낚아져서~?" 거친 파도에 무얼 낚았겠느냐는 어머니의 말씀이다. "괴기랑마랑 뻥껄이우다." ‘뻥껄’은 수확이 없다는 제주어, 어부들에겐 치욕의 단어다. "가지 말라면 가질 말지“ 패전장수인 동생과 나는 입을 닫는다.

 

모든 조건이 맞지 않았다. 봄볕 같은 햇살을 빼고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날이었다. 때가 아니면 요행을 바라지 말라는 평범한 교훈을 바다에서 얻는다. 그런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매번 그렇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도 항상 낚시를 갈 때는 요행을 바란다. 아무리 시간과 계절이 맞지 않은 때지만 나에게만은 대어가 입질을 해줄 것 같은 희망, 이는 모두가 같은 마음일 터이다. 낚시뿐이겠는가? 모든 이들의 마음이 그렇다. 사리물때 썰물이든 어떤 때든지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자신감인데 이처럼 자연의 생리를 거스를 수 있다는 자만심을 불러온다. 나이가 들어도 감성이 이성을 이기는 탓이다. 뾰족한 송곳 같다. 맘이 가로막히면 기어이 뚫고 마는 못난 성격 탓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바다가 어제 오후에 강한 샛바람에 거칠어졌다. 이 바람은 3~4일을 불다가 주말쯤에 맞춰 그치겠지. 머릿속에는 자꾸 대어가 바닷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요행수 생각에 참 큰일이다.

 

* 이 글은 중앙종합문예지 월간 시사문단 2020년 3월호에 신작으로 발표한 수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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