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끝

 

이 글은 중앙종합문예지 시사문단 12월호에 수필부문 신작으로 발표한 글입니다.

 

 

날이 너무 좋았다. 며칠 몰아치던 매서운 바람은 나무마다 이파리를 반쯤 훑어놓았다, 헤집어놓은 틈새로 햇살은 거침없이 땅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 사흘 전 내린 비로 곤두박질쳤던 기온도 해가 중천에 오르자 지레 꽁무니를 뺐다. 가을의 끝자락에 뜬금없는 봄 같은 날씨였다,

 

계절의 축에 기울어진 햇살은 한낮임에도 유리창 서편으로 들이쳤다. 사무실에서 나른함을 쫓던 시간, “청수가 바당에 갔단 빠정 죽었져.” 늘어진 몸을 화들짝 일으킨 건 수화기 넘어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고향 마을에서 어린 시절 내내 어울렸던 두 살 위의 형. 여차저차 사정 들을 겨를 없이 한 시간 거리 포구를 향해 내달렸다.

 

선착장에는 배 한 척 없이 적막했으나 방파제에는 동네 사람 여럿이 나뉘어 제각기 시끄러웠다.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을 봤는지 몇 사람이 틈을 내주자 어머니가 침울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배 입항시간에 갈아입은 듯 몸빼 옷차림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방파제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젖어 든 목소리로 일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날씨는 전날보다 더 좋았다. 바다는 더없이 잔잔했고 그믐날인 여덟 물때여서 조류의 흐름도 좋았다. 이른 아침, 아버지는 자리돔잡이 출항을 서둘렀다. 자리돔잡이는 모선(母船)과 자선(子船) 두 척이 한 팀으로 이뤄진다. 닻을 놓아 고정된 모선의 이물과 고물에서 각각 자선이 그물을 끌고 반대 방향으로 나가 사각의 그물 형태를 잡는다. 자선 또한 닻을 놓아 고정되면 그물을 바다 밑 가까이 내려서 기다린다. 자리돔 떼가 그물 위를 지날 때면 일제히 네 방향에서 그물을 끌어 올려 가둬 잡는데 이를 들망 어업이라 한다.

 

선원 중에는 청수 형이 있었고 두 척의 자선 중 한 척을 맡았다. 오전 밀물 시간 조업이 끝나고 정오 무렵 그물을 모선으로 회수하는데 청수형 자선은 닻 놓은 자리에서 움직임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모선을 끌고 가보니 배 위엔 벗어놓은 구명조끼 한 벌만 남겨져 있었다. 황망히 주변을 둘러보고 근처에 조업 중인 다른 어선에 무전을 쳐서 물어도 흔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고가 났다.’ 즉시 해양경찰에 신고했고 경비정이 도착하여 일대를 수색했지만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소식은 포구에도 알려져 정박했던 어선들이 너나없이 출항하여 수색 범위를 확대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기댈 것은 수중수색뿐이라 판단되어 마을의 스킨스쿠버들까지 모두 투입되었다.

 

포구에는 모여드는 사람만큼 걱정의 소리도 늘었다. 어머니는 흘러가는 시간만큼 사색이 짙어갔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경찰이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을 전했다. 실종된 자선의 위치에서 남서쪽으로 나간 바닷속에 머물러 있었다. 삼 년 전이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나이 52세의 청수 형은 그렇게 떠났다.

청수형은 언제나 우리의 대장이고 우상이었다. 두 살이 위인 나이를 빼서 살피더라도 형의 키는 돋보이게 컸다. 유난히 하얗고 빛이 났던 얼굴. 볕에 그을리고 바람에 할퀴고 땟국물이 앉은 시골 조무래기들과는 근본이 달랐다. 고만고만한 살림을 살던 우리와 달리 나름으로 어렵지 않은 집안 살림이었다. 나이와 집안 조건이 더해져 형은 놀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형이 들에 나가면 그대로 따라가 감자 서리를 했고 바다에 나가면 입술이 파래지도록 물속을 휘저어 다녔다. 형은 미소가 참 좋았다.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시절, 형의 입은 어른처럼 점잖았고 얼굴엔 늘 미소가 넉넉했다. 그런 형은 어린 시절 내내 동경의 대상이었고 나는 충실한 심복이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지는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형과는 자연히 멀어졌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고향에서 나와 살면서 대장 청수형은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청수형을 다시 본 때는 8년이 지나서였다. 고향으로 살림을 옮기면서 다시 바다와 가까워졌고 낚시를 위해 부모님 집에 들르는 주말이 많아졌다. 어느 날, 마을 안길을 지날 때 제 몸 가누지 못하고 좌우 비틀거리며 걷는 이가 있었다. ‘젊은 사람이 제 몸 하나 못 가누게 대낮부터 뭔 술이야?’ 하며 혀를 차다가 바로 멈춰야 했다. 청수형이었다. 듬성듬성 빈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까치집이었고 몸은 곰삭은 대나무 같았다. 그러나 차를 멈추지 못했다. 손 내밀 반가움보다는 어떻게 저런 모습이 되었나 하는 의문이 먼저였다. 대장의 망가진 모습에 대한 실망, 그리고 덧붙여진 안타까움이 큰 이유였다.

 

그간의 소식은 어머니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청수형의 불행한 삶은 중학생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마을을 떠났고 아버지는 두 해쯤 지나 재혼을 했다. 아버지는 재혼 후 다른 집에 가정을 꾸렸고 외아들이었던 청수형은 홀로 남게 됐다. 혈육임에도 부모는 모질었다. 부모로부터 어떠한 보살핌도 받지 못했던 청수형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억척스러운 삶을 꾸려나갔다. 농장 일이며 공사장 일이며 가리지 않고 날품을 팔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 밑바닥 삶은 겨우 벗어났는가, 살던 집을 개조해 조그만 낚시점도 열었다. 삶은 무난해진 듯 결혼을 했고 자식도 한 명을 낳았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무슨 일에 휘말렸는지 아내는 어린 자식을 데리고 집을 떠났고 청수 형의 삶은 회복 못 할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또다시 혼자가 된 형에게는 술병만이 곁을 지켰다. 낮이고 밤이고 마을 신작로 골목길 가릴 것이 없이 비틀거리는 모습은 마을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형의 곁에 다가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운명적으로 끊어내지 못하는 외로움은 그렇게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2년 전, 청수형은 말끔한 얼굴로 아버지를 찾아왔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살아봐야겠다며 선원으로 승선시켜 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버지는 큰 벌이는 안 돼도 부지런하면 먹고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 북돋아 주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형의 어부 생활은 다짐대로 되질 못 했다. 몇 달이 지나면서 조업이 없는 날이면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횟수는 늘어났고 급기야는 조업 날까지 빼먹기 일쑤였다. 이삼일 치 벌이를 모아서 받아가면 며칠 감감무소식이었다. 집에 찾아가도 없었고 어떤 연락도 닿질 않았다. 쥐어진 돈이 바닥이 나서야 청수형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때부터는 아버지 집에 있는 술이 한두 병씩 없어졌다. 청수형의 소행임을 알고도 어머니는 모른 척했다. 대신 술 그만 마시고 정신 차려 살라는 타이름이 전부였다.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어머니는 술을 숨겼다. 그러면 선원들 집을 찾아 천원, 이 천원을 빌렸다. 그렇게 밤낮으로 마을 길거리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술잔치가 끝나서야 다시 배에 올랐다. 매번 아버지의 꾸중과 더 배를 못 태운다는 협박도 있었지만, 버릇은 고쳐지질 않았다. 청수형의 돈을 술로 바꾸게 하는 이들은 동네 또래들이라고 했다. 모든 탓은 남에게 돌리기 마련, 그들 탓이라 여겼다. 나는 그들을 파리라고 불렀다. 음식 냄새만 풍기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달려들 듯, 며칠간 조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파리 떼는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벗들이 청수형을 꼬드긴 것인지 외로운 청수형이 불러대는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돈이 있을 때만 벗이 있었고 돈이 떨어지면 철저히 버림받는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어느 날 낚시를 갔다가 방파제에 혼자 앉아있는 형을 만났다. 여러 할 말은 많았고 궁금한 일도 꽤 있어 곁을 찾아 앉았지만 끝내 입을 떼지 못했다. 얻어들은 말이 침이 되어 굳이 그 아픔을 찔러대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한참 앉아있다가 하릴없이 몸을 일으키며 한마디를 내려놓았다. “, 술 조금만 마시고 어떵 힘내영 살아봅써. 언제까지 경 살거꽈?” 대답은 없었다. 먼바다만 쳐다보는 형의 얼굴은 편안했고 미소는 어릴 때처럼 여전히 너그러웠다.

 

청수형은 시신은 실종지점 앞에서 남서쪽으로 50m 지점에서 인양됐다. 시간은 썰물이 시작되던 때, 이 시각 바다 물길은 동북 방향으로 흐르다 해안에 부딪혀 동남 방향으로 길을 튼다. 예측대로라면 실종지점에서 동쪽으로 흘러갔어야 한다. 그러나 청수형이 발견된 곳은 물길과는 반대 방향인 남서쪽 50m 지점이었다. 어떻게 물길과 반대 방향으로 끌렸을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헝클어진 타래를 풀다가 불현듯 형이 일부러 그 방향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남서쪽으로 150km 나간 곳, 이어도가 있다. 바다에 목숨을 맡긴 제주인들의 이상향, 먼저 간 뱃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자는 걱정 없이 다시는 외롭지 않을 섬.

 

봄날 같은 따뜻함은 그날뿐이었다. 이틀이 지나 다시 찬 기운이 몰아쳤다. 혼자 살던 삶이라 장례는 아버지, 어머니가 맡아 치렀다. 울어줄 사람도 없는 장례식, 청수형은 육신을 불태우고 재로 남겨져 봉안당 한 자리로 들어갔다. 살아서 외로웠고 바다에서 홀로 숨을 다하더니 가는 날까지 혼자였다.

 

파리들은 날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진 탓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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