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전화

이글은 2019년 10월 중앙종합문예지 시사문단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고 수필작가로 등단한 글 중 한 편입니다.

시사문단 10월호

어머니다. 바쁘냐? 물질 어장 감시 당번이라 바닷가에 와있다. 바다가 세서 그런지 바닷가에 사람 하나 없네. 그래도 시간은 지켜야 할 거라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중이다.

 

너희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 내가 아무 말 안 해서 그렇지 둘 생각만 하면 밤에 잠이 안 와. 무슨 일? 이젠 날 아주 바보 멍청이 취급하는구나? 풀긴 뭘 풀어? 너희들 둘이 지금 하는 짓을 내가 모르고 있는 줄 아나?
저번 유월에 동해안 여행 갔을 때, 그래! 시장에서 회 사다가 숙소에서 먹은, 너 새벽까지 술 처마신 날 말이야. 요즘 요놈들이 뭔가 이상하다 해서 둘 사이에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주절주절 잘도 이야기하던데. 동생에게 섭섭하고 화나서 그렇다고. 술은 심술보로만 들어가 차는지 아이고, 목에 핏대 세우고 그 욕에, 흉에……. 오죽했으면 내가 사정까지 하면서 달래야 했을까. 뭐, 창피? 창피한 짓인 줄은 알고?

어쨌든 난 네가 동생과 잘 이야기하고 풀겠다 하니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지. 그런데 한 달 지나도 소식 없어. 술 취한 소리라 잊어버렸나? 두 달 지나도 소식 없어. 너, 집에 와본 게 지금 몇 달째냐? 밭에 갔다 올 때도 어머니만 포구에 내려주고는 일 있다고 훌쩍 가버리고. 듣고 있어? 전화 끊은 줄 알았네.
내가 하도 답답해서 동생을 한 번 불렀어. 할 말 있으니 여기 앉아보라. 뭉그적뭉그적 들어와 앉길래, 넌 왜 형이 무슨 말만 하면 비아냥거리고 화내고 박박 대드냐고 그랬지. 얘기하고 있으니까 끝까지 들어봐! 그 말에 형은 그런 거에 삐쳤냐고, 자기가 형에게 무슨 감정이 있어서 그랬겠냐고, 그냥 형이 편하니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었다는 거라. 그래도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그러고 하다 보면 말에 가시가 섞일 수도 있고, 형이 그럴 정도면 너도 문제가 있구나 해야지. 별 뜻이 없었으면 형 한 번 만나서 미안하다고 하고 술 한잔하고 풀어버리면 될 일을 그렇게 난 잘못 없다 하고 나앉아 있으면 되냐고, 돈 없으면 어머니가 줄 테니 삼겹살이라도 사다가 형 불러서 술이나 한잔해라, 그랬더니 자기는 형에게 아무런 감정 없고, 기분 나쁘게 한 것도 없으니 형이 알아서 풀든가 말든가 해야지 왜 자기에게만 그러냐고 눈 바짝 뜨고 대드는 거야. 귓구멍은 어디 발바닥에나 붙이고 다니는지, 야 이놈아, 형은 너와 나이도 10년이나 차이 나고, 이제 이 어머니, 아버지 죽어 없으면 하나 있는 형이 네 부모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할 텐데, 설령 아무리 잘못 없다 해도 형이 그런다면 동생으로서 응당 해야 할 도리 아니냐 했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왜 매일 어머니는 큰아들만 감싸고 모든 잘못은 자기에게만 씌우냐고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문 쾅 닫고 나가버리데. 그놈의 성질머리도…….

 

그러니 야, 할 수 없다. 네가 큰 놈이고 학교도, 배운 것도 많으니 네가 풀어야지. 동생은 어차피 동생이다. 너도 잘 알잖니? 걔가 네게만 그러냐? 누구랑 이야기하다가도 자기가 아니다 싶으면 목에 핏대 세우고 화부터 내고 그러네. 아버지 이야기 들어봐도 똑같아. 바다에 같이 나가면 배 여기 세우라! 저기 세우라! 아버지를 막 시켜먹는다고 하더라. 그래도 아버지가 60년 배를 탄 사람인데 자기가 알면 얼마나 알아? 그게 아버지에게 할 태도라? 오늘도 물때가 이렇고 바람 방향이 이렇고, 이쪽에 닻 놔서 서쪽으로 흘려라, 남쪽으로 흘려라. 막 몰아세우다가 아버지가 욕 얻어 처먹고 그때야 조용해졌다더라. 성질이 그렇게 생겨 먹은 거라.

 

그래도 원체 속이 나쁜 아이는 아니라. 한 번 생각해보라. 새벽 세시든 네시든 아버지가 바다에 가자고 일어나라 하면 군소리 없이 일어나서 나가고, 병원 갈 일 있어서 차로 여기 태워가라 하면 태워가고, 착하지. 누구 집처럼 술 마시고 망나니짓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두드려 패서 경찰서에 오라 가라 하는 것도 아니고. 집 청소, 어디 고칠 거 말 안 해도 알아서 다 고치고, 바다에 나가봐야 몇 푼 벌지도 못하면서 까마귀 새끼 자식 셋 키우면서 자기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데, 어떨 때 보면 불쌍하기도 하다. 올해는 고기도 안 나고 여름 돼서 한치나 날까 했는데 이 무슨 흉년이라? 여름 다 가도록 한치 다리 하나 구경 못 하니 뭔 돈으로 살아가는지도 몰라. 부모가 돈이 없어서 큰 배 하나 사주지도 못하고 참……. 말하는 거 봐서는 밉다가도 시커먼 얼굴에 눈만 껌뻑껌뻑, 빈 광주리 들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걸 보면 저놈의 새끼를 어떻게 할까 울컥해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어휴~, 그래도 집에 손 한번 벌린 적은 없는 놈 아니냐? 착한 거라. 잠깐만 있어라. 저기 어촌계장 오네.

 

바다 들어가는 사람들 없으니 그만 집에 가라고 하네. 알았어! 전화만 끝내고 집에 들어갈 거야. 가서 아버지 저녁밥도 준비해야 하고.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한 번 양보하는 거로 해서 기분 풀라. 이번 토요일 날 어떠냐? 닭이나 삶아 먹게. 다섯 오누이 낳아 길러도 삼복이 다 지났는데 닭 한 마리 사다 주는 아들딸 하나 없고, 뭐 하려고 이렇게 살았는지……. 생각하니 갑자기 복받쳐도 그건 그렇고. 돈은 내가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만나서 풀어라. 동생에게 이야기하느냐?

 

다음에? 너도 그러지 마라. 그만큼 얘기했으면 싫어도 시늉이라도 내야지. 형이나 동생이나 어쩌면 이리 똑 닮을까? 놓고 보면 형이면 형으로서 책임감이 더 큰 거다. 아버지도 이젠 늙고, 이제 집안 주인이 누구라? 둘 뿐인 형제 사이에서 동생이 아무리 잘못했다 해도 형으로서 이해하고 품어야 하는 책임도 있는 것이지, 어디 나이로 임금질이라? 실제로 동생이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원래 말투가 그렇고 성격이 급해서 그런 걸 형이 이해해버리면 될 일을. 큰 공부한 사람이 그 정도도 안 돼서야 그 공부는 어디 써먹을 건고? 갈치가 갈치 꼬리 끊어 먹는다고 그랬어. 너희들이 지금 꼭 그 꼴이야. 가족끼리 헐뜯고 싸우고 서로 피 흘리게 뜯어먹고, 그거랑 뭐가 달라? 어머니, 아버지는 초등학교밖에 못 나와도 그 정도는 알아. 그리고 어머니가 이야기하는데도 그걸 못하겠다고? 너도 참 모질다. 이젠 어머니, 아버지 늙었다고 아들들까지 무시하니 그만 죽으라는 소리네. 못생긴 놈들. 전화 끊어!

 

 

왜, 그 소리 하려고 전화했나? 내가 모를 줄 아나? 그럼 왜 집에 안 오나? 싸우더라도 얼굴을 봐야 일이 해결되지, 그렇게 등 돌려서 서로 안 보면 영영 원수지간 돼서 너 죽자 내 죽자 할 거라?

 

어머니, 아버지 그동안 살아온 거 몰라? 네 할머니, 할아버지, 반대하는 결혼하고 나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한 번을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지 않았어. 많지 않아도 먹고살 만한 밭, 한 뙈기만 물려 줬어도 어머니, 아버지 그렇게 살진 않았다. 네가 저번에 어릴 때 일이라고 이야기하던데, 며칠 굶을 때 아버지가 할아버지 집에 너를 데리고 갔을 때. 식구들 좀 살 게 조금만 도와 달라고, 그리 애원하는데도 매몰차게 내쫓았다며? 아버지는 아무 소리 못 하고 울면서 나오고. 딱 한 번인 아버지 우는 모습이었다고 잘도 얘기하던데? 그렇게 네 누이, 남의 집 살림 보내고, 남의 배 타면서 돈 한 푼 허투루 안 쓰고 악착같이 살아왔네. 너도 자식들 키워보니 알 거 아니냐? 부모란 게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만큼 행복한 게 없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배도 한 척 마련하고 그걸 밑천으로 딸들이야 어쩔 수 없었지만, 너희 두 형제 대학교까지 보내고……. 잘 생각해보라. 그렇게 없이 살면서도 아버지가 네 작은아버지하고 한 번 다투는 거 본 적이 있니? 가난하게 살아도 가족끼리는 사이좋아야 집안이 서는 거지. 네 작은아버지도 네 동생과 성격이 비슷하잖아? 그래도 아버지가 뭐라 한 번 하는 거 본 적 있나? 부모에게도 그래. 할아버지네 그 재산 다 없어지고 나중엔 의탁할 데 없어 우리 집에 왔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원망하는 소리 한 번 들어봤나? 불쌍한 어른들, 많지 않은 재산에 할머니 병시중하며 하나하나 팔아 사는 것도 힘들었을 거라. 아무리 자식이 미워도 본마음으로 그랬을까? 생각하면 그 어른들도 힘든 인생을 산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자식으로서 부모 모시는 도리가 있는 거야. 세상에 위 없는 아래가 어디 있나? 그래서 가슴은 재 덩이가 됐어도 어른들 받아들이고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던 거라.

 

작년까지만 해도 이 동네에서 우리 집 보고 다 부러워했네. 그 집의 자식 형제들 너무 사이가 좋다고. 있으면 있는 대로 재산 싸움 나고 없으면 그나마 있다는 것에 시기하며 다투는 게 요즘인데 그 집은 자식들이 다들 착해서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고. 그땐 정말 밥 안 먹어도 배부르고 어디 나가도 꿇리지 않고 살았다. 그러던 애들이 지금 이러고 있으니 이 어머니 속은 뭐가 되겠니?

 

그러니 얘야, 이젠 네 나이도 50 중반이 됐네. 아이들도 다 커서 시집·장가 보낼 만큼 한 가정을 이뤘으면 이젠 마음도 넓게 가지고 다른 사람 이해도 하고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친구가 좋고 해도 결국엔 남는 건 가족밖에 없다. 등 가려울 때 등 긁어주는 건 가족이라. 물려준 게 없어 큰소리도 못 친다만 이만큼 살아지는 것도 하늘 덕이라 생각한다. 하늘을 어기고 싸움질하며 살 거냐? 가족끼리 제발 싸우지 말고 등 돌리지 말고 의논하고 돕고 살아가자.

 

아버지 저녁 준비 안 했다고 화내겠다. 그만 끊는다. 아 참! 집에 참돔 큰 거 하나 냉동해놨다. 토요일 날 와서 갖고 가고, 술도 한잔하고 하자. 어디서 나긴? 네 동생이 형님 들리면 지리나 끓여 드시라고 주더라. 거짓말 같으면 직접 전화해보던가!

 

먹먹해진 가슴, 저녁밥 한술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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