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다 네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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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19년 10월 중앙종합문예지 시사문단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고 수필작가로 등단한 글 중 한 편입니다.

시사문단 10월호


 

아버지는 조업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채낚기를 주로 하는 작은 배들도 포구에 묶인 지 오래다. 잦은 갈바람 때문인지, 날이 유독 더워서 그런지 바다에 고기가 없는 탓이다. 8월의 서귀포시 막숙포구는 앞바다 가까운 거리의 범섬을 오가는 갯바위 낚시꾼들만 분주하다.

 

주말이라 어김없이 낚싯대를 챙기고 막숙포구로 향했다. 지난주 헛낚시 탓에 이번에는 고등어 미끼를 준비했다. 흔한 고기인 어랭이와 우럭을 노려볼 생각에서다. 어랭이는 놀래기를 이르는 제주어다. 우럭은 쏨뱅이의 제주어로 이 두 어종은 제주도 해안 가까운 곳에 정착하여 산다. 정착하는 습성으로 사시사철 낚시가 되며 조림이나 매운탕으로 제주도 밥상에 즐겨 오르내린다.

 

여전히 아버지 집은 동네 사랑방이다. 말복 날이라 아버지 친구분들이 모여 닭백숙에 막걸리 반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내게 편찮은 시선이 꽂힌다. 밀려둔 농사일이 없는 날이면 만사 제쳐둔 채 낚싯대 매고 나타나는 자식이 마뜩잖은 탓이다. 이번엔 무슨 말씀으로 낚시 가는 걸 말리시려나. 낚싯대를 내려놓고 어머니가 건네는 닭 다리 한쪽을 뜯는데 이미 거나하게 술기운이 오르신 아버지가 한 말씀 하신다.
"고기 안 문다. 처서나 지나야 물지."
갈바람에 안 물고 한여름 더위로 안 문다. 올해는 무슨 이유가 이리도 많은지.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다. 이유가 있어서 결과가 나쁜 것이 아니다. 나쁜 결과를 받아들이려면 정당화시킬 이유가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낚시에 빠진 자식을 돌려놓으려는 마음이 덧대진 까닭도 크다.
"그럴 줄 알고 고등어 미끼 준비하고 왔지요. 큰 고기 못 잡으면 어랭이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꿩 대신 닭, 만만한 게 어랭이라고 나름 굳은 의지를 내세웠다.
"이젠 어랭이도 없어."
항상 아버지를 거드는 작은아버지, 이젠 협공으로 나를 공략한다.
"놀래기가 왜 없다는 말입니까? 썩은섬(지명)하고 두문이물(지명) 앞에 가면 많은데. 저번 주에 가서 낚아온 거는 뭡니까?"
바다에 어랭이가 없다니, 참 너무 많이 나가시는가 싶다. 해안 가까운 위치로만 접근하면 사시사철 잡히는 게 놀래기다. 그리고 썩은섬과 두문이물은 바닷물이 마르기 전까지는 없어지지 않을 최고의 낚시 명당이다.
"거기도 씨 졌어.”
씨가 말랐다니? 어디 떠들어댄 적도 없고 그 지점을 아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설령 그 위치에 접근했더라도 정확한 지점에 닻을 내려야만 하는데 그 위치를 찾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거기 너희들 갔다 온 거 다 알아. 충건이가 매일 보트 끌고 가서 온종일 낚아버린다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그게 어느새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어랭이와 우럭은 해저 암반을 주 서식지로 하는 정착성 어종이다. 반대인 회유성 어종은 계절과 조류 등에 따라 이동한다. 정착성 어종은 태어난 곳 주변으로만 머무는 습성이 있다. 그 지역에서 무리가 없어지면 새로운 개체들이 터를 잡기 전까지 낚시가 안 된다. 우연히 던진 돌에 꿩 한 마리 맞았다고 매일 가서 종일 돌 던지는 꼴과 다름이 아니다. 좋은 조과를 올리다가 어느새 낚이는 수가 줄어들면 다른 장소를 찾아 옮겨야 한다. 그래서 어렵게 낚시지점을 찾게 되면 다른 이에게는 철저히 비밀을 지킨다. 능이버섯 나는 자리는 아들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알려지는 순간 그곳에서의 낚시는 끝이다. 점점 어획량이 줄어드는 추세에서 좋은 낚시 포인트는 어부들에겐 생명의 샘과도 같은 곳이다.

 

어부들의 일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평화롭지 않다, 수많은 경쟁과 시기와 질투가 도시 못지않다. 법환포구는 자리돔잡이로 명성을 떨치던 포구다. 자리돔은 제주도의 대표 토속음식인 자리물회를 만드는 붕어 모양의 작은 생선이다. 지금이야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법환포구의 자리돔 조업 어선이 한 척으로 줄어들어 경쟁이 없지만, 예전 여러 척이 있을 때는 치열한 출항경쟁이 벌어졌다. 어느 어선이 자리돔 조과가 좋았다 하면 다음 날은 서로 출항시간을 앞당긴다. 전날 만선 했던 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다. 이른 새벽녘부터 모든 어선이 닻줄을 풀고 포구를 빠져나간다. 뺏기느냐 뺏느냐,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 5락, 대학 수능 경쟁의 법칙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자리돔 철, 여름이 지나 10월이면 부시리, 참돔 낚시 철이다. 이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배가 부시리를 많이 낚아왔다는 소문이 돌면 다음 날은 어김없이 모든 배가 그 지점을 향해 달려나간다. 모든 조업이 그렇지만 특히 부시리 낚시는 자리 선점에 그날의 모든 조과가 달려있다. 한 번 닻을 내리면 옮기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수시로 변하는 물때와 조류를 생각해서 닻을 내리고 네다섯 시간 낚시하는데 터를 잘못 잡으면 이미 그 근처에서는 다른 배로 인해 끼어들 틈이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혹여나 다른 배가 좋은 자리를 선점할까 서둘러 출항을 한다. 그러다 보면 보통 5시였던 출항시간이 4시 반으로, 다음날은 4시로 앞당겨진다.

 

그러나 일찍 나가는 것도 한계가 있게 마련, 나중에는 서로 시간만 앞당겨졌을 뿐 동시에 출항하는 식으로 정리가 된다. 동시 출항에 맞춰지면 그때부터는 마력이 높고 속도 빠른 배가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속도 느린 배들은 변두리로 밀려난다. 하지만 느린 배라고 남 뱃속에 밥 들어가는 걸 쳐다만 보지는 않는다. 새벽에 눈꺼풀 비비며 출항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아냈다. 조금 치사한 듯 보이지만 전날 미리 배를 정박해 두는 방식이다. 그날 가장 조과가 좋았던 배가 조업했던 장소를 확인하고 오후에 배를 이동시켜 정박을 해두고 다음 날 새벽 출항시간이 되면 보트로 이동한다.
"야 저것 봐라. 저것들 벌써 간 배 세워놨네.“
귀 가려운 비아냥을 들어도 확정된 수입에 여유로운 출근길이 보장된다.

 

어릴 적 아침에 아버지를 본 적이 별로 없다. 늘 좋은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새벽 출항경쟁에 나섰던 탓이다. 물려받은 것 없이 하루하루의 어획량이 가족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밥그릇의 크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형제자매들도 성인이 돼서 각자의 가정을 꾸린 후부터는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셨다. 애쓸 필요 없는 시간에 나가서 적당한 시간에 돌아오면 됐다. 악착같이 벌어야 하는 의무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탓이다.
"놔둬라." 팔순이 가까워진 지금은 아예 게을러지다 싶을 만큼이다. 아침에 조금 일찍 나가서 좋은 자리 차지해라, 물때 바뀌면 한 번이라도 더 그물 던지고 오라는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마냥 한소리다. 자리돔이 어디 가느냐고, 오늘 못 잡은 거는 내일 잡으면 된다. 낚시도 그물도 알고 보면 다 그날 운이더라. 서둘러 나가서 좋은 자리 차지해도 운이 나쁘면 허탕이다.
”오늘은 항문이걸(지명) 부시리가 미터급은 되더라. 내일은 다들 그쪽에 가서 서보라.“

 

올해 초부터는 오히려 다른 어부들에게 장소까지 먼저 밝힌다.
"포구에 배가 몇 척 된다고 서로 눈치 보고 자리싸움할 필요가 있나. 그냥 이 배던 저 배던 알아서 필요한 만큼 잡으면 되는 거지. 서로 많이 잡고 적게 잡고 엇바뀌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 거지.“
어머니는 나이 들어서 다리 힘도 빠지고 팔 힘도 없어지니 이젠 돈 욕심 없이 바닷바람 쐬러 가는가 싶다 한다. 하지만 이 정도면 70년 어부 생활에서 바다의 넓음을 받아들인 철학적 깨달음에 가깝다.

"그래도 거기 내가 찾아낸 곳인데……. 왜 거기 것을 다 낚아버렸단 말입니까?“
꼭꼭 숨겨두고 아껴둔 걸 뺏겨버린 심정으로 하소연했다. 여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이러다가 바다에 고기 다 씨 져서 우린 낚을 것도 없겠네요."
그새 취기가 역력해진 아버지가 우레 같은 목소리로 내지르신다. 뱃사람 목청에 대한 트라우마를 다시 경험해야 했다. 물론 이날의 낚시는 접어야 했다.

 

"야 이놈의 자식아, 바다가 다 네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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