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배와 낚시 좀 가주세요

추간판 디스크가 터지고서 한 달, 그리고 수술과 입원을 끝내고 한 달이 지나가니 정확히 두 달이 되었다. 퇴원후 회사에 복귀를 하고나니 집과 회사를 오가는 하루의 생활이 늘 반복이다. 습관은 반복으로 생긴다고 그랬던가, 복대를 차고 절름발이 걸음으로 불편하게 지내는 것도 이젠 적응이 되나보다. 복대없이는 허리쪽이 허전하고 언제 다시 쓰러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차고 다니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하다.

 

퇴원하고 며칠쯤 지나 동생 부부가 집으로 찾아왔다. 양손에 들린 마트이름이 선명히 찍힌 비닐백을 보니 배불룩하게 맥주와 안주들이 들어있다. 말이야 형님 병문안이라지만 늘상 술벗해주던 형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탓에 그간 못채웠던 술배를 채워볼가 하는 심산인게 분명하다.

 

역시나 들어오자 마자 거실 탁자에 술잔부터 꺼내놓더니 맥주와 안주를 깔고 술자리를 벌인다. "형님은 아파서 못마시지예? 그럼 형수님하고 마십니다." 동생에게 늘 잘대해주는 형수님에게는 이런 자리가 극히 고마울 따름. 허리디스크 환자인 형과 만삭인 제수씨 둘은 안주거리만 축내고 있을 수 밖에.

 

수술이야기, 입원과 병원이야기로 시작된 대화가 끝날 무렵, 역시나 낚시 이야기로 흘러간다. 형님 없는 동안 막숙 누구는 배 타고 나가서 황돔 몇 킬로그램짜리를 잡았다더라, 범섬에서 돌돔 57cm를 올렸다더라, 막숙 두 형제가 바다에 나타나질 않으니 법환 앞바다가 물 반 고기 반이 됐더라는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숨만 나온다.

 

 

"아주버니, 제발 영배 데리고 배낚시 좀 가주세요. 쉬는 날이면 매일 집에서 빈둥대고 이것 저것 참견이나 하고 아주 미치겠어요." 옆에서 동생의 말에 중간중간 추켜주던 제수씨가 나에게 애절하게 말을 건낸다. 레저조종면허가 없는 동생이 낚시를 가려면 형이 필요한데 그게 안되니 무료함을 집에서 그렇게 푸는 모양이다. "제수씨, 저도 낚시 가고싶어 지금 환장하겠습니다. 근데 어쩝니까? 몸이 이 모양인걸" "그러니까 빨리 회복하셔서 좀 데리고 나가주세요." 일단은 알았다고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수술 절개부위가 아물면서 허리 통증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무릎과 발쪽의 신경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 걸음걸이가 퇴원때 정도에서 크게 나아지질 않는다. 마음은 벌써 이번주, 이번주 하며 바다에 갈 이야기를 하는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인간이 무슨 낚시냐고 집사람에게 타박이나 맞는다.

 

일주일쯤 지나 주말에 막숙포구 아버지 집에 들렀다. 언제나처럼 낯익은 얼굴들이 모여앉아 동네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그 사이에 동생과 윤집형님이 둘만의 이야기에 빠져있다. 들어보니 갯바위 낚시에 대한 이야기다. 나이 60이 훌쩍 넘은 윤집형님은 촌수항렬로 인해 억울하게 한참 어린 나에게 형님 소리를 듣는다. 한라봉 과수원을 일구면서 남는 시간에 집에 들려 식사도 하고 아버지,어머니, 찾아온 동네분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한다. 이 윤집형님의 유일한 취미가 낚시인데 배낚시가 아닌 갯바위낚시가 주종이다. 법환에서는 갯바위낚시의 대가라 불리는데 한 번 출조, 세네 시간에 따돔,뱅에돔,돌돔 가릴 것 없이 3~40 여마리를 낚아오니 그럴만도 하다.

 

 

이야긴 즉슨 낚시를 못가 죽을 지경인 동생이 윤집형님에게 부탁해 갯바위 낚시를 배울겸 출조를 가기로 한 모양이다. 이미 갯바위낚시대와 그에 맞는 장비들을 마련하고 실전강의를 듣는 모양이다. 전유동이 어떻고 반유동이 어떻고 낚시 사이트에서 익혔던 용어들이 나오지만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쇠귀에 경읽기다. 하지만 갯바위 낚시는 낚시가 아닌가? 장소가 어디던 방법이 무엇이던 낚시를 간다는 계획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휴대폰 메세지를 보내면 즉시 법환 집으로 오라는 동생의 말에 다음날 아침부터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렸다. 11시가 다 되어갈 무렵 휴대폰 알림음이 울린다. 그것도 연속으로. 메세지 내용을 보니 온통 사진이다. 따돔과 뱅에돔이 30 여마리쯤 된다. 아무리 윤집형님의 기술전수가 있었지만 갯바위낚시 초보자가 이럴 수는 없다. 이미 나갈 준비를 해놓은 터라 바로 차를 몰아 법환 집으로 향한다.

 

도착해보니 테이블엔 따돔 회가 상추와 회초장과 함께 올라가 있다. 렌지에선 고소한 구이냄새가 진동을 한다. 수돗가엔 술안주용으로 손질하고도 남은 돔들이 즐비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윤집형님과 동생, 놀러온 동네어른들 사이에 끼어앉아 생선회를 주어먹으며 듣는다. 윤집형님이 물때에 맞춰 장소와 포인트를 선정하고 정확한 케스팅 지점, 목줄길이, 깔맞춤한 떡밥제조와 조류에 따른 정확한 지점에의 투척의 결과란다. 훌륭한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있다고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끝나며 자리가 파한다. 모두들 돌아가고 동생과의 둘만의 시간이다. "갯바위 낚시 어떠냐?" 은근 동생을 딴곳에 뺏길까봐 조바심에 물어본다. "좋던데요. 은근 재미도 있고" 어허~ 이거 큰일이다. 이러다 갯바위낚시에 빠지면 나 혼자 어떻게 다니라는 말인가? "배낚시보다 재밌냐? 계속 그거 할거냐?" "애이~ 낚시는 배낚시가 최고지, 파워풀하고. 남자라면 거친 배낚시 아닙니까? 갯바위낚시, 이거 은근 재밌기 하지만 기다리는 게 좀 지루한 감이 더 많습니다." " 그러냐? 역시 배낚시 만한 게 없지?" " 그럼요, 형님. 팔 빠져라 저킹하고 훅킹되면 파워풀하게 싸우는

배낚시만한 게 어딨다고요." 

 

물론 동생의 활달하고 선 밖으로 나가는 성격에 갯바위낚시 쪽으로 전향할 리가 없지. 장비는 들였놨기에 틈틈이 가기는 하겠지만 그냥 기분전환 차원의 일탈(?)이니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고 포구에 가서 바닷바람도 맞고 멀리 거침없이 보트로 달리던 범섬도 바라본다. 저녁시간이 됐다. 집에 가야할 시간. 이것 저것 어머니가 챙겨주는 반찬거리를 들고 집밖을 나서는데 동생이 한마다 한다.

 

"거 허리나 빨리 나습써! 배낚시는 어느 세월에 가쿠광?~"

 

마음을 들켰다. 서둘러 포구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4)

  • 찌바라기
    2015.09.17 16:10 신고

    다녀간후로 이래저래 바삐 지내다가 오늘 문뜩 생각이나 들어왔더니 글이 많이 올라왔네요..
    지금쯤이면 배낚시를 다시시려나요..ㅎㅎ

    • 2015.09.18 11:34 신고

      네, 요즘 주말에 나갑니다.
      저번 주말엔 줄삼치 8마리, 30센티 쏨뱅이 하나 했지요.
      그간 소식도 없고해서 어찌 편안히 지내시는가 보다 했습니다.
      다들 안녕하시지요?

      어디 카페라도 하나 열어서 옛 지기들 모아서 같이 떠들기라도 해볼까 합니다.
      더할나위도 제주에 정착을 할거고 하니 이곳 저곳 소식들이 서로 궁금들 할테지요.

  • 낭만
    2016.04.29 06:42 신고

    상세하고 부드러운 지식에 대한 세심함이 돋보이네요~
    처음 대하는 글이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2016.04.29 08:54 신고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배낚시와 어촌의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게으름 때문에 글을 올리지 못하네요.
      방문과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