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광어를 낚다

예정된 날이 밝고 창문을 통해 햇살과 하늘을 확인하고 바로 휴대폰으로 바다날씨를 봤다. 전날 예보와 다름이 없는 날씨다. 오후 1시 출발로 약속을 했으니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마음은 미리 바쁘다. 인치쿠와 타이바라의 갯수와 손상된 것을 없는지, 광어를 위한 웜도 상한 것이 없나 꼼꼼이 살핀다.

 

늦잠이 많은 딸아이 지수가 10시쯤해서 일어났다. 전날 미리 아빠에게 같이 낚시를 간다고 약속해둔 터라 아빠가 사라지기 전에 일어난 것이다. 낚시 도구를 모두 챙기고나서 샤워와 몸단장을 하고 식사를 끝냈다. 몇시간 흘려보내는 시간이 지나 낚시대와 낚시가방을 둘러매고 출발한다.

 

서귀포시 월드컵경기장 도로에 들어서면 먼발치로 법환포구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아주 좋다. 바다날씨 예보에는 상황이 좋아도 정작 바다날씨는 배를 띄울 수 없을 정도로 기상이 나쁜 적도 많다. 바다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포구 안쪽 아버지 댁에 들어서고 바로 점심을  먹었다. 낚시대에 웜과 인치쿠를 체결하고 같이 가기로 한 직장동료를 기다렸다. 인치쿠나 타이라바는 쇼크리더에 직결 채비를 한다. 하지만 광어나 능성어는 웜에도 반응을 하기 때문에 이중의 효과를 보기위해 30~40cm 위쪽으로 와이드훅을 달아 웜을 끼워넣는 채비를 많이 쓴다. 일반적인 지깅의 채비는 아니지만 이 채비법으로 그동안 재미를 많이 봤던 탓에 항상 이 변형된 채비를 고집하게 된다. 

 

오후 한시가 돼가고 포구로 나갔다. 지수와 같이 보트를 당기고 밀며 오르고 안을 정리하는 중에 직장동료가 도착하고 배에 올랐다. 엔진 시동을 걸고 포구를 빠져나갔다. 파도가 없으니 배 앞머리가 들리면서 쾌속으로 흔들림 없이 나간다. 목적지는 범섬 왼쪽 끝단에서 동쪽으로 200 여미터 떨어진 포인트. 예전에 광어 3마리를 끌어올린 곳이다.

 

 

저킹과 단순 릴감기를 섞어가며 낚시를 시작하는데 30 여분이 지나도 세사람에게 아무런 입질이 없다. 날이 이리 좋은데 물고기의 반응이 없다니 웬일인지 싶다. 범섬에서 동북쪽 방향으로  500 여미터 떨어진 능성어 포인트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30분이 지나도 반응이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싶어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봤다. 없다.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서귀포칠십리 유람선만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갈 뿐 이리 넓은 바다에 낚시 배가 한척도 없다. 아하~ 오늘 물때가 고기 낚을 때가 아닌 모양이다.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고 같이 온 직장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광어나 능성어가 안되면 우럭(쏨뱅이)이라도 잡아야 된다. 다시 엔진시동을 걸고 범섬 남쪽으로 달려 섬 가까이에 바짝 붙여 세웠다. 우럭 포인트다. 예전 고등어 생미끼로 우럭과 어랭이(용치놀래기) 낚시를 다닐 때 심심찮은 조과를 보장해 주던 곳이다. 줄을 드리우자마자 큼직한 우럭이 걸려든다. 옆에서도 같은 우럭들이 낚여 올라온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활성도가 낮아도 포인트에서 자기 눈 앞에서 흔들리는 먹이감까지 외면할까? 십여마리 매운탕거리로는 만족할 만한 마릿수를 채우고 다시 광어 낚시 포인트로 이동했다.

 

 

참 모를 일이다. 세사람이 침묵모드로 한 시간여를 지루한 릴링만 거듭하던 때 멀리서 배 한 척이 다가왔다. 가까이 와서 보니 광진호. 아버지의 어선이다. 보트 옆으로 바짝 붙게 와서는 큰 소리로 말씀을 남기신다. "들물 끝나고 썰물 나가는 네시 반에 입질 들어온다. 좀 쉬면서 그때 기다렸다가  낚시해라." 동생 직장동료들과 배낚시 나왔다가 들어가시는 길에 일부러 찾아와 알려주신다. 고마울 따름이다.

 

 

드문드문 우럭 몇마리가 바늘에 걸려 올라왔다. 그리 망중한 격의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지수의 환호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50cm는 됨직한 광어 한 마리가 배안에서 펄떡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저리 큰 광어를 낚아 올리다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힘이 좋길래 우럭 큰 놈인 줄 알고 끌어올렸더니 바로 광어 이 녀석이라 한다. 아빠를 따라 낚시를 다닌지가 언젠데 벌서 아빠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춘 녀석이 됐다. 광어는 이빨이 매우 날카롭다. 그래서 광어의 입쪽으로 손을 갖다대거나 입을 잡으려 해서는 절대 안된다. 손가락이 잘리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포셋가위로 아래턱을 잡아올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내내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진 지수.

 

 

시간을 보니 정확히 네시 반이다. 평생을 바다에 사신 아버지의 귀신같은 예지력이다. 갑자기 나머지 두사람의 릴링이 힘있게 바빠졌다. 하지만 광어는 그것으로 끝. 우럭 몇마리 더 잡아올리고 나니 해가 서쪽 바다로 떨어진다. 낚시대를 정리시키고  직장동료를 위해 범섬관광을 시켜주기로 했다. 섬을 한 바퀴 도니 주상절리 절벽의 위엄에 적잖이 놀란다. 하기야 어릴적부터 늘상 보아온 내가 봐도 항상 경이로운 풍경이니 말이다.

 

범섬구경을 마치고 뱃머리를 세우고 포구로 들어왔다. 아버지 집으로 가 고기를 손질했다. 광어는 횟감으로, 우럭은 매운탕감으로 손을 본 후 술상을 냈다. 참 꿀맛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집과 동생집 식구, 직장동료까지둘러앉아 두어시간을 생선파티가 벌어진다.

술상의 화제는 당연히 지수다. 느낌이 어땠느냐? 부터 아빠를 능가하는 낚시실력 거론까지 목에 기부스를 해도 될 지경이다. 그래도 충분히 자랑할만 하다. 자칫 우럭 매운탕파티로 끝날 자리를 고급횟감으로 바꿔주었으니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낚시는 마무리가 됐다. 이번 주엔 긴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수목원도 가야되고 해안도로도 가야된다. 뿐만인가 보말잡이 약속도 잡혀있다. 다 술이 오른 상태에서 내 자신이 뱉어놓은 약속들이니 이제와서 싫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일과들 중에 슬쩍 배낚시 일정 하나 끼워놓아야겠다. 친구들이랑 연휴 여행을 가는 딸 지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떨어진 아빠의 위신은 세워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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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찌바라기
    2015.05.07 11:30 신고

    아버님의 경험과 연륜은 무시 못 하겠습니다..

    아버님~!! 최고입니다.^^

    • 2015.05.07 11:55 신고

      그러게요.
      어린이날 서현이는 즐겁게 지냈나요?
      디스크로 쓰러져서 119 후송에 지금 병원입원중입니다.
      이 좋은 연휴에 이게 뭡니까?
      꼭 이럴때 바다날씨는 짱짱이고 말이죠.

  • 찌바라기
    2015.05.07 12:36 신고

    어쩌시다가ㅠㅠ
    저도 허리때문에 고생한지라 그 고통 너무나 잘 알아요..
    빠른쾌유 기도드립니다.
    어린이날 출근해서 서현이 잠깐나와 밥만먹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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