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섬 동모엔 고래가 산다

"걸었어, 걸었어!" 영배의 경쾌한 외침이 울렸다.


보트로 범섬주변 곳곳을 탐색하며 소득없이 돌아다닌지 한 시간, 들물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동모 앞에 멈췄다. 동모는 범섬 동쪽 끝 바위 코지(곶)를 이름이다. 갯바위에서는 벵에돔, 돌돔, 감성돔들이, 배낚시에서는 가끔 다금바리도 입질을 하는 나름 이름있는 포인트다. 


동모는 들물 시기에 파도가 거세다. 들물은 동쪽에서 흘러오다 범섬을 맞닥뜨리고 좌우로 갈라진다. 갈라진 조류는 서쪽으로 곧게 흐르는 들물 조류와 직각으로 만나면서 사나워진다. 한 곳으로만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과 풍파에 부딪히며 방향이 틀어진 사람이 만나면 사단이 나는 그런 이치다. 


 

보트는 사방에서 치받는 파도로 뒤뚱거리며 물길을 따라 빠르게 흘렀다.


"커~ 커! 큰 놈이우다" 몇번의 내림과 저킹 끝에 동생에게 온 첫 입질이다. 낚시대가 수면쪽으로 급히 휘었다. 띠디딕~, 릴 드래그 마찰음이 나면서 낚시줄이 풀렸다. 낚시대를 겨드랑이에 단단히 고쳐끼고 급히 드래그를 잠궜다. 한 두번 릴을 감아올리는 모습이 호쾌하다. 보트의 흔들림에도 아랑곳없이 일어선 채로 릴을 감아올린다. 낚시줄은 수면에 직선으로 팽팽하다. 부시리라는 이야기다.  


부시리는 바늘에 걸리자마자 수직으로 바닥까지 끌고간다. 바닥에 닿으면 주위의 암반을 빙빙 돌며 낚시줄을 감는다. 감겨진 낚시줄은 당겨서 끊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이리저리 전후좌우로 요동쳐 다니는 방어와는 달리 주변지형을 이용하는 영리한 녀석이다. 그래서 부시리가 걸리면 바로 2~3미터까지 끌어올려 암반층 감기를 막아야 된다. 그 후부터는 드래그를 살짝 풀어 밀고 당기기를 한다. 부시리의 저항 정도에 맞춰 힘이 빠질 때는 줄을 감고 저항이 클 때는 줄이 풀려나가도록 조절을 한다. 그래야 낚시줄을 끊지 않고 부시리를 물 위까지 제압할 수 있다.


"아! 빠졌어, 빠졌어" 거의 45도 가까이 휘었던 낚시대가 순간 평평해졌다. 부시리가 중간에 바늘을 털어냈다. 바늘걸이가 제대로 안됬거나 주둥이 주변에 얇게 걸린 경우다. 입걸림이 오면 바로 두 번 정도의 강한 챔질을 해서 바늘을 완전히 부시리 입에 단단히 박아놓아야 한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입질에 당황하면 이를 잊기 쉽다. 부시리 낚시에서 바늘털이를 당하는 경우는 거의 이에 속한다.


 

"어건 또 뭐여~" 아쉬움도 잠시, 영배의 탄식이 터진다. 낚시대 끝으로 낚시줄이 힘없이 쳐져 바람에 날리고 있다. 바늘이 빠진 것이 아니라 낚시줄 중간이 끊어진 것이다. 부시리나 방어낚시 처럼 대형어종을 상대하는 낚시에서는 강한 인장력이 필요한만큼 원줄을 합사로 사용한다. 보통 40LB를 넘겨 쓰는데 우리 표기로 하면 18kg의 무게나 충격에 견디는 정도다. 낚시줄이 끊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합사줄과 연결한 쇼크리더나 메탈지그를 연결한 매듭부분이다. 그만큼 합사가 강하다는 이야기다. 


"뭐냐? 부시리가 아니고 밑 걸린 거 아니냐?" 낚시줄을 회수해서 보니 합사원줄에서 끊어져 있다. 합사 원줄에 흠이 나있었거나 부시리를 올리는 중에 배 가장자리에 휩쓸렸거나를 가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웬만한 외부충격에도 버티는 합사가 끊어졌다면 저항의 힘이 대단했다고 보면 된다. "뭔 소리 햄수가? 내가 낚시를 몇 년 해신디 밑 걸림도 모르쿠광?" 하기야 동네에선 지깅낚시의 신이라 불리는 동생으로선 억울한 이야길 테다. "한 방에 밑으로 쳐박길래 부시리 닮다허연 그냥 땡겨신디 몇 번 감고는 꿈쩍도 안헙디다. 버티는 감은 오는디 바위에 감아불카부댄 그냥 땡겨불어신디.. 부시리 아니라나신가? 하여튼 엄청 센 놈이우다"


부시리가 아니면 도대체 어떤 놈이었을까. 생각해봐도 수심층에서 그만한 힘으로 버틸 수 있는 어종들이 없다. 작년 근처 항문이걸에서 걸어올렸던 대형종 만세기였으면 모를까. 하지만 만세기는 수평으로 달아나며 바로 수면 위로 솟구쳐 바늘털이를 하는 습성으로 봐서는 아니다.


 

이후 아무런 소득도 없다. 포구로 돌아오는 보트에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바닥에서 엄청난 힘으로 버티고 앉아 끄덕도 하지 않았다, 고래 심줄같은 합사 원줄까지 끊어버렸다.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다.


고래...


법환포구에서 올레길을 따라 서쪽으로 2km 정도 가다보면 '서건도'라는 섬이 있다. 하루 두 번 썰물 때 걸어갈 길이 생기는 섬으로 옛지명은 '썩은섬'이다. 좋은 한글 지명을 버리고 굳이 한문 이름을 지어 쓰는 행정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든 이 섬에 얽힌 이야기다. 옛날 법환마을에 고약한 썩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냄새를 따라가던 마을사람들은 썩은섬에 도착한다. 섬에 올라보니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죽은 채 섬 갯바위에 걸쳐져 썩고 있었다. 그 이후로 이 섬을 썩은섬이라 했다. 어릴적 어른들에게 듣기도 했지만 마을지에 공식 기록된 지명의 유래다. 법환 바다에 고래가 있을 리 있냐는 의문에 대한 명백한 증거다.


결론은 고래로 하기로 했다. 동생 영배를 믿어야 한다면 이 외에는 없다. 혹자는 밑걸림이 분명하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섬 동모 바다엔 고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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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2018.01.04 21:20 신고

    안녕하세요. 몇 번 다녀가다가 인사 남깁니다.
    쓰시는 글이 너무 좋아서요. 제주에 이사와서 낚시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낚시보다 글에 낚였습니다.
    한참만에 들렀는데, 그래도 작년 여름에 쓰신 글은 보고 가네요.

    그냥, 괜히 반가워서 인사 적고 갑니다.

  • 2018.01.05 16:04 신고

    고맙고 죄송합니다.
    여러 쓸 글들이 많은데 담이놓고만 있네요.
    관심 가져주시는 분도 계신데 가끔씩이라도 올려야 하겠습니다.

  • 2018.03.06 23:26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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