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당이 다 니꺼냐?

아버지는 자리돔 조업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채낚기를 주로 하는 작은 배들도 포구에 묶인지 오래됐다. 갈바람 탓인지 날이 뜨거워서 그런지 바다에 고기가 없는 탓이다. 7월의 막숙포구는 범섬을 오가는 갯바위 낚시꾼들만 분주하다.


주말이라 어김없이 낚시대를 챙기고 막숙포구로 향했다. 지난주 헛낚시 탓에 이번에는 고등어 미끼를 준비했다. 지깅낚시에 입질이 없으면 생미끼 묶음채비로 어랭이(놀래기)와 우럭(쏨뱅이/제주도)을 노려볼 생각에서다.


여전히 아버지 집은 동네 사랑방이다. 중복날이라 아버지 친구분들이 모여 토종닭 백숙에 막걸리 반주로 점심을 드시고 있다. 이번엔 무슨 말씀으로 낚시 가는 걸 말리시려나. 장비를 내려놓고 어머니가 건네는 닭다리 한 쪽을 뜯어먹는데 거나하게 술기운이 오르신 아버지가 한 말씀 하신다. "괴기 안문다. 처서나 지나사 물주" 갈바람에 안물고 한여름 더위로 안물고 올해는 무슨 이유들이 이리도 많은지. "경헐줄 알안 고등어 썰엉 와수다. 십이가스(줄삼치) 해보당 안되민 어랭이라도 낚앙 와사주 마씨" 꿩대신 닭, 만만한 게 어랭이라고 나름 이유를 댔다.


"이젠 어랭이도 어서" 항상 아버지말을 거드는 작은아버지, 나의 작은 희망까지 꺾어놓는다. "어랭이가 무사 어실말이꽈? 썩은섬허고 두문이물 앞이 가민 하수다. 저번이 간 낚아온 거 몰람수가?" 바다에 어랭이가 없다니, 예전 딸아이와 가서 우연히 자리잡은 그 곳에서 바구니 가득 잡아왔던걸 모르고 하신 말씀일 터다. "거기도 씨 져불어서" 씨가 말랐다니? 어디 떠들어댄 적도 없고 그 포인트를 아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거기 너네 갔다온 거 다 알암져. 00이가 맨날 땜마(보트,작은배)탄 강 호루 종일 낚아불엄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그게 어느새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어랭이와 우럭은 암반을 주 서식지로 머무는 정착성 어종이다. 계절과 조류 등에 따라 이동하는 회유성 어종과는 달리 한 곳에만 머물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서 남획은 새로운 개체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낚시가 안된다. 다금바리가 몇마리 낚였다고 이후 소득도 없는데 줄창 그 장소로 가서 낚시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이미 그곳 암반에 정착한 다금바리는 다 낚아 올렸다 보면 된다. 몇번 해보고 없으면 다른 장소를 찾아 옮겨야 된다. 그래서 어렵게 찾은 포인트는 남에게는 비밀을 지킨다. 능이버섯 캔 곳은 아들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알려지는 순간 그곳에서의 낚시는 끝이다. 점점 어획량이 줄어드는 추세에서 좋은 낚시 포인트는 어부들에겐 생명의 샘과도 같은 곳이다.


어부들의 일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평화롭지 않다, 수많은 경쟁과 시기와 질투가 도시처럼 섞여있다. 지금이야 법환바다에서 자리돔 조업 어선이 한 척이라 경쟁이 없지만 예전 여러 척이 있을 때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배 한 척이 자리돔 조과가 좋으면 다음 날은 서로 출항시간을 앞당긴다. 전날 만선했던 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이른 새벽녁부터 닻줄을 푼다. 뺏기느냐 뺏느냐, 네시간 자면 붙고 다섯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5락, 경쟁의 법칙이다. 


자리돔 철이 지나 10월이면 부시리,참돔 낚시철이다. 이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배가 부시리를 많이 낚아왔다 하면 어김없이 다음날은 모든 배들이 그 곳으로 출항을 한다. 모든 조업이 그렇지만 부시리 낚시는 특히 자리선점이 조과를 좌우한다. 한 번 닻을 내리면 옮기기가 쉽지 않다. 시시로 변하는 물때와 조류를 생각해서 닻을 내리고 네 다섯 시간 낚시를 한다. 그러니 혹여나 다른 배가 좋은 자리를 선점할까 서둘러 출항을 한다. 그러다 보면 보통 5시였던 출항 시간이 4시 반으로, 다음날은 4시로 앞당겨진다. 


그러나 일찍 나가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나중에는 서로 시간만 앞당겨졌을뿐 동시에 출항하는 식으로 정리가 된다. 동시출항에 맞춰지면 그때부터는 마력 높고 속도 빠른 배가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속도 느린 배들은 또다시 변두리로 밀려나간다. 하지만 느린 배라고 죽기만 하란 법은 없다. 새벽에 눈꺼풀 비비며 출항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아냈다. 조금 치사한 듯 보이지만 전날 미리 배를 정박해 두는 방식이다. 그날 가장 조과가 좋았던 배가 조업했던 장소를 확인하고 오후에 배를 이동시켜 정박을 해두고 몸은 보트로 이동한다. 직장인으로 치면 회사옆으로 이사하는 셈이다. "야 저거 보라. 저것덜 벌써 간 배 세와불어신게" 귀 가려운 욕 먹어도 여유로운 출근길이 보장된다.



어릴적 기억으로는 아침에 아버지를 본 적이 별로 없다. 늘상 좋은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새벽 출항경쟁에 나섰던 탓이다. 물려받은 것 없이 하루하루의 어획량만이 가족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끈이었음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형제자매들도 성인이 돼서 각자의 가정을 꾸린 후부터는 경쟁에서 한 발 물러나셨다. 애쓸 필요없는 시간에 나가서 적당한 시간에 돌아오면 됐다. 악착같이 벌어야 되는 의무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탓이다.


"내불라게" 칠순에 5년을 더넘긴 지금은 아예 게을러지다 싶다. 아침에 조금 일찍 나가서 좋은 자리 차지해라, 물때 바뀌면 한번이라도 더 그물 던지고 오라는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늘상 '놔두라' 다. 물욕 금욕에 초월하셨는가. 자리돔이 어디 가냐고, 오늘 못잡은 거는 내일 잡으면 되는 거다. 부시리 낚시도 알고보면 다 그날 운이라 한다.  


'오늘은 항문이걸 부시리가 미터급은 되더라. 내일은 다들 그쪽에 가서 서보라' 올해 초부터는 다른 어부들에게 장소까지 먼저 밝힌다. "법환에 배가 몇척 된다고 서로 눈치보고 싸우고 할 필요가 있나. 그냥 이 배던 저 배던 알아서 필요한 만큼 잡으면 되는 거지" 어머니는 나이 들어서 다리 힘도 빠지고 팔힘도 없어 바닷바람 쐬는 정도만 하는 거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해탈에 가깝다고 봐야된다.


"거기 나가 찾은 건디 왜 거기껄 다 낚아불 말이꽈" 꼭꼭 숨겨두고 아껴둔 걸 뺏겨버린 억울한 심정으로 하소연했다. "영허당 바당에 괴기 다 씨 져불엉 우린 먹을 것도 어시케 마씀" 한 마디만 하고 말걸. 취기가 역력해진 아버지가 급기야는 뱃사람 목청으로 버럭하신다.


"이눔의 세끼가, 바당이 다 니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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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당이 다 니꺼냐?  (0)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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