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로졌져, 나가지 말라

며칠 있으면 다시 부산의 학교로 돌아갈 아들과 같이 뱃길 완도 여행을 마쳤다. 여행 후 아들과의 배낚시 약속이 이어져 있던 터라 여행 후 피로를 핑계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주 특유의 후텁지근한 더위가 아침부터 기승이다. 점심 겸하여 늦은 아침을 먹고 장비를 챙겨 아들과 법환포구로 향했다. 전날 동생이 알려준 줄삼치(제주말 십이가스) 출현 소식에 한껏 기대가 크다. 마음으로는 저녁에 식구 넷이 둘러앉아 올해 첫 십이가스 뎀뿌라(줄삼치를 얇게 썰어 밀가루 반죽을 입히고 식용유에 튀겨 먹는 제주도 가정식 요리)를 맛볼 수 있으리라.


법환마을에 도착해 아버지 집에 들어서는데 시끌시끌하다. 어르신 세 분이 마당에 탁자를 놓고 막걸리 술자리가 한창이다. 낚시 장비를 내려놓고 술자리를 살피니 안주가 돼지족발이다. 불길함 예감이 든다 .자리돔과 생선안주가 없으면 아버지 배가 바다조업을 안갔거나 도중에 철수하고 돌아왔다는 얘기가 된다. 바다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바당 가젠? 바당 막 갈로졌져, 가지말라" 옆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 바다에 갈바람이 들었으니 낚시 가지말라 하시는 말씀이다. "무사? 오당 보난 막 볼아신디" 포구로 들어서면서 흰 파도포말 하나 없는 잔잔한 바다를 보고 온 터라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막 본본해봬도 나가보민 울렁울렁행 아버지도 오늘 배 안나가시녜"  잔잔해 보이기는 해도 막상 나가면 파도가 울렁거린다는 말씀이시다. 어르신들 족발 안주에 이유가 있음이다.



'갈로'란 갈바람, 즉 남서풍을 말한다. 이 갈바람이 시작되면 일주일 정도 지속이 되는데 너울이 매우 심하게 인다. 배를 치고넘는 삼각파도는 아니어도 넓고 깊게 형성되는 너울파고가 특징이다, 배의 요동이 적은 대신 높고 길게 배가 일렁거려 배 위에 서있기도 힘들다. 서서 작업해야 하는 자리돔 그물 작업이 어려운 이유다. 배멀미에 웬만하게 강한 이도 갈바람 바다에서는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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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해도 나가라도 봐사주" 그래도 나가보기라도 해야겠다는 이야기에 술자리 한쪽에서 고함치듯 타박이 들려온다. "가지말랜허민 가지말주, 어제 한치 붙이래 가신디 일어사지도 못허곡 앉아만 있당 엉덩이 다 헐언 약볼란 댕겸져"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신가? 작은 아버지가 어젯밤 한치 낚시를 갔는데 심한 너울로 앉아만 있다가 엉덩이가 헤져 연고를 발랐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어머니가 고집스레 말려도 그 고집을 받은 피요, 작은아버지가 핏대를 세워 말려도 그 핏대를 물려받은 집 아들 아닌가? "가당 못가민 돌아와불곡, 가지민 범섬 동짝이 붙어 사민 아뭉치도 안헙니다" 가다 못가면 돌아오고, 무사히 가게 되면 범섬 동쪽에 붙어 바람막이로 삼으면 충분히 가능할 듯 싶다. "갈로땐 나가도 괴기 안문다. 다른 배덜도 하나도 안나가시녜~" 골목안쪽에서 어머니의 목청이 높다.


승선명부를 작성하고 출항신고를 마친 후 시동을 켰다. 포구 방파제를 빠르게 벗어나 범섬을 향했다. 2분쯤 나아갔을까 갈바람 속 너울파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범섬을 향해 갈수록 커지는 너울, 어림잡아 파고는 2미터를 넘을 듯하고 파장은 10 여미터가 됨직하다. 그래도 잡아치는 파도가 없는 덕에 속도를 줄여 45도 각도로 너울을 넘실대며 달린다.


범섬 동쪽, 섬이 바람과 너울을 막아주니 나름 잔잔하다. 롱지그와 제트지그로 각각 지깅채비를 하고 아들과 둘이 한 채비씩 들고 낚시를 시작한다. 지깅낚시가 처음인 아들에게 저크방법을 알려주니 제법 리듬을 타며 적응을 한다. 30분 여  헛저킹 뒤에 장소를 옮기기로 하고 남쪽,동쪽으로 진행을 시도했다. 그러나 높은 너울로 포기하고.결국은 범섬가에 붙여 새끼섬 쪽으로 이동했다. 10여분의 저킹을 이어가던 중 아들에게 입질이 왔다. 낚시대 휩새를 보니 쏨뱅이는 아니다. 반발하는 힘을 보니 줄삼치도 아니다, 무언가? 잠시후 딸려나오는 녀석은 철 지난 광어다. 배 쪽을 보니 검은 반점이 뚜렷하다. 양식장에서 빠져나오거나 치어 때 바다로 방류됐다는 증거다. 봄 산란철을 지나 먼 바다로 나갔을 시기에 물려 올라왔으니 양식광어에 맞는 생태다. 길이는 40센티미터 정도, 큰 크기는 아니나 아들에게는 기억에 남을, 처음 접해보는 대어다. 



이후로 아무런 입질이 없다. 목표로 했던 줄삼치는 커녕 쏨뱅이 하나 입질을 받지 못했다. 전화가 울린다. 어머니다. "바당 안쎄시냐? 들어와불라게" 아들과 손자가 좋지 않은 날씨에 고집부리며 작은 배 하나 타고 나갔으니 걱정이 태산일 터였다. "쪼꼼 쎘어요~" 하고 전화를 받는 아들에게 "잔잔허댄 허라, 걱정헌다" 핀잔을 주고 다시 이동 준비를 한다.


들물이 시작될 때니 다시 범섬 동쪽으로 배를 이동시켰다. 들물 때라 들어오는 길목을 노린다는 계산이었는데 역시나 오산이다. 여전히 지그는 물 아래서 혼자 놀고 배 위에서는 아들과 아빠의 팔이 아파온다. 그만 하고 갈까, 좀만 더 기회를 엿불까 고민이 크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빨리 들어와불라, 보름 막 터점녜"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육상도 마찬가지인 모양으로 어머니의 걱정이 큰 목소리다. 전화를 끊고 멀리 파도를 보니 너울 위로 잔물결 파도가 겹쳐난다.  심상치 않을 거라는 전조다. 큰 너울에 삼각파도가 겹치면 작은 배로는 순식간에 위험상황에 빠진다. 바다날씨는 변덕스럽다는 산날씨보다도 더 변화무쌍하고 생명의 위험은 순간에 닥친다. 


덜컥 겁이 났다. 아들에게 낚시대를 접으라 하고 널려있던 장비를 수습한다, "왜 갈려고요?" 조금 아쉬웠던 탓일까, 아들이 물어온다. "그래, 바람이 세지고 파도가 저렇게 삼각으로 치게 되면 바로 위험상황이 돼. 이럴 땐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바다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 거야" 대단한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마냥 진중히 이야기 해주고는 보트의 시동을 켜고 포구로 뱃머리를 돌렸다. 갈바람, 남서풍 탓에 보트는 바람방향을 따라 나는 듯 달렸다.  전화를 받고 나와 계시던 아버지가 도착한 배 닻줄을 거둬주신다,


 "거봐, 강 고생만 했지?" 배 안 정리를 마치고 돌아온 집, 광어 한 마리 들어있는 살림망을 보고 어머니가 말씀 하신다. "경해도 광어 한 마리라도 해시난 돼수다" 광어 한 마리로, 고집부리고 나갔던 정당성을 찾으려 하지만 바로 엄한 말화살이 돌아온다. "저 쪼꼴락헌 땜마로 이 갈로보름에 나강댕기당 희어뜩 허민 죽어!" 작은 보트로 센 갈바람에 바다를 돌아다니다 순간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짓을 했다는 말씀이다. 평생을 어부로, 어부의 아내로 살며 터득한 바다의 생리를 거슬렀던 행동에 대한 일침이다. 그럴 것이다. 어쩌면 좋은 운에 의해 다행히 낚시를 마쳤을 뿐 위험상황에 몸을 던졌던 것은 사실이다.


갈로지면 바당에 절대 나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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