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터급 부시리를 놓치다 - 놓친 고기는 다 크다

1. 1미터 30센티의 부시리

 

작년 여름, 지깅낚시를 처음 시작하고 아직 손에 익지 않을 때 일이다.

 

그때도 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작은 보트를 빌려 타고 배낚시를 갔다. 범섬 옆 포인트에 보트를 세우고는 바로 낚시를 시작했다. 동생은 슬로우지깅을, 나는 인치쿠를 이용해 바닥고기를 노리고 있었다. 드문드문 쏨뱅이와 구문쟁이가 인치쿠에 걸려 올라왔다. 동생은 긴 시간동안 열심히 저킹을 하고 있었지만 작은 고기 한 마리 입질을 받지도 못했다. 날이 저물어 갈쯤 조용하던 동생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왔어, 왔어!"

 

드디어 기다리던 입질을 받은 것이다.

 

"뭐야, 뭐? 커?"

 

지그에 입질을 받은 것이니 대형어인 방어나 부시리 둘중 하나일 것이다. 낚시대의 휨새로 보아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다.

 

"엄청 세. 와하하하~"

 

낚시대는 거의 반쯤 휘어져 있다. 힘겹게 낚시대를 위로 들어올리고 릴을 감는 동작을 반복한다. '끙끙' '잇잇' 동생의 힘 쓰는 소리가 크다.

 

"형, 뜰채 뜰채. 거의 다 올라와수다."

 

뜰채를 집어들고 뱃전에서 올라오는 녀석을 기다린다. 물 아래에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녀석이 흐릿하게 보인다.

 

"호꼼만(좀만) 더, 호꼼만 더."

 

'오늘 이게 무슨 횡재수냐.'하며 수면에 올라오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동생의 탄식이 터진다.

 

"아, 이런 ××. 터졌어, 터졌어. 철려(놓쳐)불었어"

 

"뭐야!"

 

올라오던 곳을 바라보니 물밑에서 아른 거리던 하얀색의 모습은 온데간데가 없다. 낚시줄을 회수해보니 쇼크리더의 지그를 묶은 곳에서 끊어져 있었다. 부모를 잃은들 저렇게 탄식할까, 보트 갑판에 주저앉은 동생은 나라를 잃은 듯 연신 곡소리다. 끌어당기며 뺀 힘과 고기를 놓친 허망함에 동생은 축 늘어진다.

 

 

"아까 올라오는 거 보니까 엄청 크더라. 한 1미터는 되겠던데?"

 

낚시할 기운이 사라진 동생에게 위로 삼아 말을 건넨다.

 

"1미터는 안되고예, 힘으로 봐그넹 육칠십은 될 거우다."

 

참 솔직도 하다. 누가 본 것도 아니고 잡아서 길이를 재본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다고 하면 될 일인데 말이다.

 

"야! 그냥 1미터라 그래. 누가 확인할 것도 아닌데 뭐. 2미터라고 해도 돼"

 

"푸하하하. 맞아예. 경허민(그러면) 1미터 반"

 

"오케이. 1미터반으로 하자"

 

포구에 보트를 대고 비탈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쏨뱅이와 구문쟁이 몇 마리를 쏟아놓는데 어머니가 누가 얼마만큼씩 잡았는지를 물어온다.

 

"거 형이 다 잡은 거우다."

 

"니는 혼(한) 마리도 못핸다?"

 

"히라스(부시리의 일본어) 1미터 30짜리 호(하)나 올라오단 너미(너무) 커사신디(큰 때문인지) 철려(놓쳐)불어수다."

 

"무사? 그 아까운 걸.낚아와시민 푸지게 먹어시컬"

 

"게메마씸(그러게 말입니다). 억울행 죽어지쿠다." 

 

그날 동생이 놓친 고기는 대형급 부시리로서 샤크 신동만 프로만이 낚는다는 1미터 30센티미터급이 되었다. 

 

 

 

2. 1미터의 부시리

 

포인트는 역시 범섬 옆 콧구멍 포인트.

 

평일 휴무에 걸린 동생과 맞추느라 오후 반차를 내고 보트를 탔다. 포인트는 역시 범섬 옆 콧구멍 포인트(범섬에는 포구방향으로 두개의 해식동굴이 나란히 뚫려있는데 콧구멍을 닮아 이렇게 부른다). 둘 다 지깅 채비를 하고 낚시에 들어갔다.

 

겨드랑이에 땀나도록 30 여 분을 흔들어대는(저킹)데도 입질이 없다.

 

"바당에 히라스가 괴었덴헌(바글거린다고한) 건 다 어디 가불어서?"  

 

참을성이 원체 없는 나는 메탈지깅을 회수하고 인치쿠로 바꿔 달았다. 부시리가 없으면 쏨뱅이라도 낚아가자는 실리주의적(?) 심산에서다. 인치쿠를 내리고 느린 속도로 저킹을 하는데 원줄이 갑자기 빳빳해지면서 낚시대 초리가 아래로 쳐박는다.

 

입질이다. 그런데 너무 강하다. 낚시대를 올려 릴을 감는데 이건 인치쿠의 단골인 쏨뱅이나 구문쟁이의 입질이 아니다. 뭔가 대단히 큰 것이 걸린 것이다. 줄을 감을수록 강해지는 저항. 물밑에서 좌우로 어지럽게 당겨지는 힘. 분명 부시리나 방어라 직감했다. 슬로우지그에도 물지않던 것들이 인치쿠에 달려들다니, 참 모를 습성이다.

 

"쭉 끌어올립써."

 

동생이 어느새 옆에서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면서 코치를 해준다. 힘좋게, 그러나 순순히 끌려오던 것이 갑자기 물밑에서 몸부림을 치며 저항을 한다.

 

 

"버팁써, 버팁써"

 

말 잘듣는 학생처럼 버텼다. 그리고 저항이 약해지자 다시 줄을 감아들였다. 그 순간 또 시작되는 강력한 몸무림. 줄을 끌고 들어가는데 힘이 정말 대단하다.

 

"드랙 살짝 풀고, 너무 쎄민 터집니다예."

 

그렇다, 드랙을 풀어야했다. 아니다. 풀려져 있는 드랙이었지만 릴을 쥔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스풀을 꽉 눌러버리니 줄이 풀려질 리가 없다. 경황이 없었던 거다. 쏨뱅이나 낚자고 던진 인치쿠에 갑자기 생각도 못한 놈이 달려들어 혼을 빼놓으니 이건 정리가 안된다.

 

5 미터 길이로 묶은 쇼크리더가 릴 스풀에 감기면서 거의 잡았다고 느낄 무렵. 마지막 바늘털이를 하는지 엄청난 힘이 순간적으로 전해지더니 연 끊어지듯 낚시대가 가벼워진다.

 

"어어어어~~"

 

동생의 탄식소리가 흐르고 상황이 종료됐다. 비참한 건가, 허무한 건가? 낚시꾼이라면 이런 마음 안다. 다들 놓쳐본 경험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엄청난 저항의 힘을 느끼고 난 다음의 가벼움. 저항하는 힘의 세기는 아쉬운 마음과 정확히 비례한다.

 

"아이 형. 줄을 어떵(어떻게) 묶어시민 끊어졈수과?"

 

무슨 소리? 나도 이젠 지깅낚시 1년차인데 묶음법 정도야 모를라고. 줄을 회수해서 살펴보니 인치쿠 헤드 아래에 달린 꼴뚜기루어의 훅라인이 끊어져 있었다. 전용 지깅훅이 아닌 인치쿠 훅 라인이 그 녀석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단 뜻이다. 인치쿠 훅 라인이 감당안되는 녀석, 비틀어 생각하면 엄청난 놈이다.

 

"야. 아까 거 인치쿠 라인 끊어진 거 보민 1미터는 됨쪄."

 

대답없는 동생. 수면 가까이 올라올 때 혹시 봤나? 하지만 아직까지 동생은 그때 놓친 녀석에 대해 말이 없다. 그래서 그날 내가 놓친 고기는 부시리로서 1미터급이 되었다.

 

 

3. 정하기 나름인 부시리

 

작은 보트로 낚시를 다니면 몸이 안정이 안된다. 조금이라도 파도가 있는 날이면 서있는 체로는 몸 지탱이 힘들다. 아버지와 약속을 했다. 담배를 끊는다는 조건이다. 큰 배를 타고 나가는 부시리 지깅낚시에 기대가 한껏 컸다.

 

이번엔 범섬 북쪽에 배를 대었다. 어군탐지기로 살펴 정한 곳이니 조과는 걱정안해도 되겠는데 이상하게 입질을 안한다. 바닥층에서만 탐지가 되고 그것도 빠르게 이동하는 부시리 떼다. 승선한 낚시인원은 총 4명. 한참 심심한 저킹 끝에 40센티미터급의 잿방어 세 마리가 걸려 올라왔다. 물론 나를 빼고. 이후론 입질이 또 끊어졌다.

 

범섬 동쪽 콧구멍 포인트로 이동을 하고 다시 입질을 기다려봤다. 배 안엔 엔진소리만 부릉거리고 한참 동안 지속되는 침묵이 흐른다. 그러던 중 나의 저킹에 덜컥 무게가 느껴졌다.

 

"앗싸! 왔다."

 

짧은 함성을 지르고 열심히 릴링을 했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동생과 아버지가 슬쩍 쳐다보고 만다. 그래도 내게는 첫 입질이니 기분이 알싸하다. 지그도 튼튼한 슬로우전용 지그를 달았으니 염려없이 끌어올렸다. 부시리 낚시는 역시 저항하는 힘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을 즐기면서 쭉쭉 당겨 감는다. 그러던 중 툭하는 느낌과 함께 이어지는 허망한 낚시대 초리의 펴짐. 또 줄이 터진 것이다. 

 

 

"진짜. 형 요새 무사(왜) 경햄수광(그러시느냐)?"

 

연 이주동안 허망한 터짐이니 마음이 극히 좋지 못하다. 이번엔 어디가 부실한 탓일까? 줄을 회수해보니 쇼크리더 중간에서 끊어져 있었다. 낚시 중간에 어디엔가 쓸려 흠집이 있는 걸 손가락으로 느꼈는데 그냥 놔둔 탓이다. 낚시에서는 조금이라도 줄에 흠집이 있으면 즉시 교체를 해야한다. 그걸 귀찮다고 무시하고 낚시를 지속한 까닭이다.

 

그렇게 낚시가 끝났다. 오후 늦게 동네일을 봐야하는 아버지의 배에서 보트로 갈아타고 두 시간을 더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낚시, 정말 안될 때는 안된다. 그 많다던 녀석들이 어떻게 일제히 사라지는지, 아니면 우리만 피해서 다니는지 모를 일이다.

 

저녁 지는 해를 왼편에 두고 포구로 향했다. 다시 아버지 집. 그중에 잡힌 쏨뱅이 두마리가 끝이었다. 그런데 낚아온 조과에 대해 어머니도, 집사람도 물어보질 않는다. 그렇다고 놓친 걸 자랑이라고 스스로 떠벌일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럴 땐 나 혼자 정하면 된다. 그게 편하다. 남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어도 된다.

 

그럼 추리를 해보자. 처음 저항하는 힘이 남달랐으니 아무리 못해도 1미터는 기본이다. 그런데 쇼크리더에  흠집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미터 보다 조금 덜되는 녀석이다.

 

이렇게 그날 내가 놓친 녀석은 이름이 부시리, 크기는 1미터 조금 안되는 녀석이 되었다.

 

참고로 제주도 남쪽 근해에서 주둥이가 해진, 1미터급, 1미터 30센티미터급 부시리를 낚았다면 그거 우리 형제가 놓친 거다. 확실하다. 낚시바늘에 걸렸으니 점유가 된 거고 놓쳤으니 이탈, 즉 점유이탈물이다. 꼭 돌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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