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주기 아까운 맛 - 부시리

2년전 직장 발령으로 경기도 산골에 살때 알게 돼 동생 삼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꿈은  제주도 정착이었다. 10월초, 술 한 잔 하자는 연락이 왔다. 서귀포시 예래마을 구석에 월셋방을 얻어 다섯식구가 담아들었다. 형님 하나만 믿고 일단 저질렀으니 잘 살펴달라는 협박성 부탁이었다. 지난 여름에 사전답사차 내려왔을때 내가 걱정말고 내려오기만 하라고 큰소리 뻥뻥 쳤던 탓이다.

 

당장 도와줄 게 없었다. 술 한 잔 하며 걱정을 달래주는 것, 조금의 제주살이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는 것 뿐이었다. 도움이랄 것이 없었다. "그래도 생선만큼은 확실하게 먹여줄 수 있다. 쉬는 날마다 낚시를 다니며 공치는 날도 있긴 하지만 나눠줄 것이야 마련 못하겠는가. 내, 바닷고기는 확실하게 잡아다 줄께~" 하고 또 큰 소리를 쳐놓았다.

 

일요일, 집에서 빈둥거리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배에 잡아서 살려놓은 히라스가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는 전화였다. 히라스는 일본말인 히라마사(ヒラマサ)의 속명이다. 우리말로는 부시리다. 전날 부시리 배낚시에서 뻥껄(한마리도 못낚았다는 제주어)한 뒤의 반가운 소식이다. 부시리 지리탕의 배지근한 맛과 쫄깃한 생선회의 식감에 군침이 절로 돌았다. 간편한 겉옷만 차려입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제주도에서는 부시리,방어낚시 시즌이 열린다.

 

10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제주도 앞바다에는 부시리와 방어 떼가 몰려든다. 이 시기의 부시리와 방어의 주 먹이감은 자리돔이다. 먹이를 쫓아왔던 녀석들이 자리돔 조업을 할 때 쳐놓는 그물에 같이 걸려드는 것이다. 잡힌 부시리는 배의 물칸에 넣고 살려둔다. 작은 놈 한 두 마리는 조업을 끝낸 선원들 술안주로 삼는다. 나머지는 마을사람들이나 횟집에 판다. 요즘 시세로 마리당 1만5천원이니 많이 잡힐 때는 본업인 자리돔 수입보다 더 좋다. 일종의 불로소득이다.

 

포구에서 기다리던 작은아버지와 같이 배에 올랐다. 물칸 속에서 싱싱하게 살아있는 두 마리를 건져올려 아가미쪽에 칼을 넣었다. 싱싱하게 먹기 위해서는 살아있을 때 피를 빼줘야 한다. 이른바 즉살인데 방법은 간단하다. 칼끝을 아가미 사이로 집어넣고 몸쪽 방향으로 길게 찌른다. 아가미와 몸통 사이에 심장이 있어 이렇게 하면 즉살과 피빼기가 동시에 된다. 그런후 아가미 바로 아래 머리와 몸통을 잇는 턱을 가로로 완전히 잘라준다. 처리가 되면 뜰채에 담아 바닷물에 1~2분 담가둔다. 삼투압으로 인해 피가 깨끗하게 빠진다.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횟집에서 주방장이 잡아주는 것만 먹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건을 훔친 자나 훔친 물건인 줄 알면서도 그 장물을 취득한 자나 모두 공범이다.

 

내장손질이 끝난 부시리, 곧 생선회로 포를 뜰 것이다.

 

한 마리는 회를 뜨고 나머지 한 마리는 내장 손질만 했다. 회를 뜨고 난 머리와 내장, 벼, 껍질은 버리지 않는다. 어두육미라고 했다. 머리와 내장, 뼈를 포함한 뒷고기는 생선회보다 맛있다. 매운탕을 해도 맛있고 지리로 끓이면 더 좋다. 그렇게 손질한 머리와 뒷고기를 따로 싸고 내 몫인 부시리 한 마리, 덤으로 싸준 야드(제주도에서는 방어 작은 것을 이렇게 부른다) 한 마리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문득 용감한 정착민 동생네 생각이 났다. 덤으로 얻은 방어 한 마리나 전해주고 갈까 전화를 하고 예래마을로 향했다. 동생집에 도착을 하고 건내줄 방어를 꺼내보니 좀전 어머니 집에서 봤던 크기가 아니다. 내가 먹기엔 커도 남 주기에는 너무 작다. 순간의 망설임. 따로 포장한 부시리 부속물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 진국도 같이 줘, 말아?' 배지근한 지리탕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래도 먹으라고 주는 거, 바닷고기는 걱정말라고 큰 소리 쳐놓은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 결국 눈 질끈 감고 방어 한 마리와 같이 주고 나왔다.

 

부시리는 생선회, 방어는 지리나 탕,구이가 좋다.

 

살이 희고 기름기가 적은 부시리는 주로 회로 먹는다. 살이 쫀득하고 찰기가 있어 맛있다. 방어는 살이 약간 붉으면서 기름기가 많다. 회로 먹으면 부시리는 깔끔한 뒷맛을 주지만 방어는 약간 물컹거리고 기름진 느낌이 든다. 방어도 회로 즐겨 먹지만 제주도에선 구이나 지리, 매운탕으로 많이 먹는다. 방어회가 맛없다, 부시리 지리는 맛없다는 게 아니다. 어떤 식으로 먹던 두 종류 다 맛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먹을만큼 먹어본 나로서의 판단이 그렇다는 말이다. 이거 제주도 어부라면 모두 공통이다. 시비 걸지 말자.

 

방어만큼은 아니지만 회를 뜨고 난 부시리 부속물을 넣고 푹 끓인 지리도 일품이다.

 

부시리와 방어의 제철은 겨울이다. 제주도에서 년중으로 잡히기는 하지만 살이 무르고 기생충의 위험 때문에 겨울철 외에는 회로 잘 먹지 않는다. 찬바람이 시작되는 10월 중순부터 시작해서 이듬해 3월까지가 시즌이다. 이 시기 제주도 앞바다에 닻을 내리고 뒷편에 긴 낚시대가 펼쳐져 있으면 모두 부시리,방어 낚시하는 배다. 

 

예전 어릴 적에는 부시리,방어 낚시가 따로 없었다. 가끔 그물에 같이 걸려오는 녀석들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요즘은 부시리,방어 낚시법과 다양한 채비가 보급되면서 겨울철 별다른 잡이가 없는 제주도 어민들의 주수입원이 됐다.

 

어부들의 부시리,방어 낚시 방법은 두가지다.

 

먼저 제주시권이나 서귀포시 남부권에서 쓰는 채비법이다. 전용낚시대에 전동릴을 장착한다. 카본 14호(60LB)의 원줄을 최대 500m 감고 카본이나 나일론 10호(40LB)의 목줄을 10m 가량 연결한다. 바늘채비를 띄워줄 찌를 달고 다음으로 도래를 이용해 두 갈래의 목줄을 이어 튼튼한 돔용 낚시바늘을 묶는다. 미끼는 크릴새우를 쓴다.

 

범섬 포인트에서 부시리 지깅 준비를 하고 있다.

 

낚시 포인트를 지정하면 우선 조류를 본다. 포인트에서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으로 500 여미터를 나가서 선수(배앞쪽)의 닻을 내리고 배를 고정한다. 채비가 끝나면 아래로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 배 뒷물칸에 곤쟁이 뭉치를 넣어 떡밥으로 계속 흘려준다. 곤쟁이 떡밥은 조류를 따라 포인트까지 흘러가면서 부시리나 방어를 유인한다. 이에 맞춰 낚시대를 고정하고 원줄을 최고 200m에서 최고 300m까지 풀면서 흘려준다. 흘리는 중간에 어신이 오면 전동릴을 조작해 강력한 힘으로 감아들인다. 부시리는 낚시에 걸리면 무조건 암초지대로 쳐박는 습성이 있다. 그러면 도리없이 채비를 끊어내야 한다. 그래서 후킹이 되면 낚시줄에 여유를 주지말고 순식간에 감아들여야 한다. 전동릴 없이 그 힘이 센 부시리,방어를 200~300m 가까이 끌어당기는 거 천하의 강호동이 와도 안된다. 

 

또 하나의 어부채비가 있다. 주로 방어낚시에 많이 쓰는 방법인데 살아있는 미끼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생미끼는 자리돔을 많이 쓴다. 방어 낚시 전에 그물을 이용해 자리돔을 잡고 물칸에 넣어 살려둔다. 방어 포인트에 도착해서 떡밥식으로 살아있는 자리돔 수십마리를 바다에 던져넣는다. 떡밥용 자리돔 떼를 보고 방어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낚시바늘에 자리돔 배지느러미쪽을 꿰어 채비를 던진다. 자리돔떼를 먹던 방어가 낚시바늘에 꿰어져있는 자리돔도 순식간에 잡아챈다. 원줄이 빠른 속도로 풀리고 무거운 느낌이 오면 챔질을 하고 줄을 걷어들인다. 외줄낚시에서는 릴을 안쓴다. 오로지 손낚시로만 한다. 자리돔 생미끼를 쓰고 원줄을 많이 풀지 않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방어의 엄청난 저항 때문에 손을 많이 다친다. 그래서 방어 외줄낚시에서는 손가락 마디마다 반창고나 보호용 테이프를 감고 그 위에 장갑을 낀다. 방어축제로 유명한 제주도 모슬포에서 쓰는 외줄낚시 방법이다. 

 

부시리,방어 지깅낚시, 저킹 액션법은 두가지만 알면 된다.

 

부시리와 방어는 지깅으로도 낚는다. 파핑낚시(미노우를 달고 멀리 던져 재빨리 감아오면 부시리나 방어가 따라와서 입질을 한다)를 통해 미터급 이상의 부시리와 방어도 들어올리지만 일반지깅으로는 주로 50~70cm급이 낚인다.

 

지깅채비는 지깅전용대에 원줄은 합사(PE) 3호, 쇼크리더는 7호에서 10호까지 사용한다. 메탈지그는 학꽁치 형태의 긴 막대지그나 고등어,전갱이 모양의 지그를 쓰는 게 좋다. 지그는 낚시하는 시점에 주로 활동하는 어류모양을 흉내낸 것이 좋다. 제주도에서는 꽁치나 전갱이,고등어가 년중 먹이감으로 활동하므로 이 모양의 지그를 사용하면 안정된 손맛을 볼 수 있다.

 

전용 메탈지그가 없으면 인치쿠 지그를 사용해도 된다. 인치쿠 헤드는 길쭉한 모양이어야 한다. 인치쿠에 달린 전용 꼴뚜기훅은 약하다. 이것을 제거하고 튼튼한 어시스트훅이나 트레블훅으로 교체를 한다.

 

인치쿠, 부시리 지깅낚시에 사용해도 된다. 단 헤드가 길쭉해야 하고 아래에 달린 꼴뚜기 훅은 지깅전용 훅으로 교체한다.

 

저킹(낚시줄에 달린 지그를 규칙적으로 흔들어 고기를 유인하는 방법)은 흔히 두 가지로 한다, 한 가지는 던져넣은 지그가 바닥에 닿으면 낚시대 아래 끝(손잡이)을 옆구리에 낀 상태로 낚시대 끝(초릿대)을 쭉 위로 당긴다. 그 다음 낚시대 끝을 내리면서 올려진 원줄의 길이만큼 릴을 두 바퀴나 세 바퀴 감으며 원줄을 회수하는 방법이다.

 

두번째는 첫번째 보다 좀 빠른 액션이다. 지그가 바닥에 닿으면 먼저 릴 손잡이를 수직방향 아래에 오게 한다. 그런 다음 낚시대를 올리면서 동시에 릴 손잡이를 반바퀴 위로 돌리고 낚시대를 내리면서 릴 손잡이를 반바퀴 아래로 돌린다. 이 액션을 규칙적으로 빠르게 한다. 

 

인터넷 찾아보면 저킹에 대한 여러 방법들이 나오는데 모두 영어단어다. 설명도 어렵다. 굳이 애쓰며 익히지 않아도 된다. 다른 저킹은 필요없다. 이 두가지 방법만 알고 열심히 흔들어대면 된다.

 

지깅으로 낚아낸 부시리, 힘이 좋아 수분동안 씨름해야 한다.

 

부시리 부속물과 방어를 건내주고 이틀이 지나 동생네에게서 휴대폰 메세지가 왔다. 부시리 부속물로 지리를 끓여 내놓았더니 아이들이 밥을 두 그릇씩이나 비웠다고 했다. 또 낚아다 주겠다는 답을 보냈다.

 

이제 이틀이 지나면 주말이다. 부시리는 일주일에 한 손 크기만큼씩 자란다. 부쩍 커서 나타날 녀석들, 벌써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남 주기 아깝지 않을만큼 낚아야 할 책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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