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가스, 어부들만 아는 맛 - 줄삼치

  어릴 적엔 태풍이 참 잦았다. 태풍이 발생하고 북진을 하면 늘 제주도를 통과했다. 요즘은 달라진 기후 탓인지 몇년째 태풍다운 태풍을 볼 수 없다. 7월부터 9월 사이 여름에 집중되는 태풍이 오면 어촌에는 때아닌 여름 보릿고개를 맞았다. 바다에만 의존해 꾸리던 어촌 살림에서 고기잡이를 할 수 없는 일주일 가량은 배 곯며 사는 수 밖에 없었다. 대형화 되고 첨단 안전장비들로 무장한 요즘 어선들과는 달리 낚시배 정도 크기의 소형어선이 전부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듯 태풍이 집중되는 여름, 어렵던 때를 버티게 해준 고마운 물고기가 있다. 제주도에서는 '십이가스'라 불리는 줄삼치다. 십이가스, '가스'라는 말이야 가다랑어의 일본어 표현인 가쓰오(カツオ)에서 유래된 것으로 유추가 된다. 그런데 '십이'라는 용어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줄삼치는 이름만 삼치로 불리지 실은 다랑어 부류에 속한다. 참치,참다랑어로 대표되는 다랑어는 고등어과의 어류로 줄삼치도 이 부류에 속한다. 속명은 '이빨다랑어'다. 다랑어 종류중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줄삼치는 고급어종인 다랑어류의 한 종류이면서도 생선취급을 못받는다. 낚여 올라오자마자 바로 죽고 살이 쉬이 물러져 가치가 떨어지는 탓이다. 거저 주면 성의를 봐서 한 두 마리 가져갈지 모를까 돈 받고 팔리는 녀석이 아니다. 그래서 이 녀석을 잡아오면 거의 자가처리한다. 

  아무리 천대받는 줄삼치라 하지만 어부들에게는 훌륭한 반찬이나 술안주가 된다. 조업을 끝낸 후나 궂은 날씨로 포구동네를 할 일없이 거닐다 술 한 잔 생각이 나면 바로 배를 끌고 나간다. 인근 앞바다를 다섯바퀴쯤 돌고나면 줄삼치 열댓마리는 기본으로 잡힌다. 잡혀온 줄삼치는 생선회로 직화구이로 튀김으로 안주가 된다. 줄삼치가 맛있는 안주거리로 변신을 하고 고소한 냄새가 집밖을 나가면서 포구를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어부들에게는 아무리 맛없는 생선이라도 맛을 찾아내는 나름의 비결이 있다. 줄삼치를 맛있는 음식으로 장만하기 위해서는 상하기 전에 바로 해체에 들어간다.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나서 아가미 뒷쪽부위부터 칼집을 내어 몸통부분만 도려낸다. 그런 다음 몸톰을 세로방향 세갈래로 잘라내고 각각의 갈래살을 가로로 5cm간격으로 토막내며 자른다. 토막에 알맞은 소금간을 하고 햇볕이 약하게 드는 곳에서 꼬들꼬들하게 말린다. 이렇게 말린 것을 저장해 두었다가 직화구이나 기름을 두른 후라이펜에 튀기면 그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구이가 싫다면 튀김으로 먹는 방법도 있다. 튀김으로 먹으면 더 맛있다. 우선 발라낸 몸통을 약간 두툼한 생선회 썰듯이 썰어낸다. 매운 풋고추와 파를 썰어 밀가루와 같이 버무려 튀김옷을 만든다. 줄삼치 살에 튀김옷이 골고루 입혀지도록 버무린 후 한 점씩 기름을 두른 후라이펜 넣고 바삭하게 튀겨내면 어느 생선가스 못지 않은 식감과 풍미가 있다. 식초 몇방울을 떨어뜨린 간장소스에 찍어먹으면 금상첨화다.   

 

 

  회로 먹을 수도 있다. 대신 낚아올린 후 현장에서 바로 피를 빼고 서늘한 곳에 두고 30분이 지나지 않아야 한다. 냉장보관하면 더 좋고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 회로 먹을 때는 주로 뱃살 부위를 먹는다. 아무리 싱싱하게 보관을 했다고 해도 몸통살은 쉬이 무르기 때문인데 무르는 정도가 덜한 뱃살부위를 먹는다. 더 오래두고 회로 먹는 방법도 있다. 잡아서 바로 피를 빼고 살을 떠서 냉동을 시키면 된다. 먹을 때는 냉동된 상태에서 썰어먹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냉동에 들어가기 전 생선살을 자르기 쉽게 얇게 져며구어야 썰기가 쉽다. 한치도 이렇게 냉동을 시켰다가 먹을 수 있다.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깨끗히 손질을 한 상태에서 둘둘 말아 호일에 싸서 냉동시킨 후 썰어먹으면 그 맛이 최고다. 내가 먹어 본 생선회중 줄삼치와 한치는 활어회보다 냉동회가 더 맛이 있다.  

 

 

  이 줄삼치는 주로 여름철에 잡힌다. 7월중순부터 10월 초순까지 제주도 연안에서 낚인다.

  제주도의 전통 줄삼치 낚시는 '호루'라는 채비를 쓴다. 호루채비는 튼튼한 경심원줄에 잠수판이라는 자그마한 판을 달고 그 끝으로 꼴뚜기모양의 루어바늘을 10개 내외로 단다. 달리는 배 고물(뒷편)에서 채비를 던져넣으면 잠수판이 바닷물 속으로 파고들면서 꼴뚜기루어을 끌고 들어간다. 이때 수면 아래에서 꼴뚜기들이 줄지어 달리는 모습이 연출되며 줄삼치들이 먹이로 알고 순식간에 쫓아와 입질을 하며 걸려든다. 요즘은 잠수판 대신에 비행판을 쓰기도 한다. 잠수판이 루어를 수면밑으로 가라앉히는 역할이라면 비행판은 이름 그대로 물위에 떠서 루어를 수면에 붙여 끄는 방식이다. 부시리와 방어를 공략하는 방법 중 하나인 파핑낚시와 같은 원리라 생각하면 된다.

  낚시방법은 간단하다. 채비를 던진후 배가 속도를 내서 달리면 루어가 잠수판을 따라 수심아래로 내려가며 끌려온다. 입질파악을 위한 수심조절은 풀어놓는 원줄의 길이로 한다. 원줄을 짧게 주면 잠수판이 수면 가까이에서 움직이고, 길게 주면 더 깊은 수심쪽에서 유영한다. 그날 입질이 많이 되는 수심층을 파악해 원줄의 길이를 조절하면서 공략한다. 원줄을 감은 손에 강한 챔질이 느껴지면 선장에게 바로 신호를 보낸다. 그와 동시에 배가 속도를 급격히 줄이며 줄삼치가 걸린 쪽으로 선회를 한다. 그러는 사이 원줄을 손으로 당겨 줄삼치를 끌어올린다. 한번 입질에 여러마리가 같이 걸려들기 때문에 저항하는 힘이 엄청나다. 그래서 호루낚시를 할 때는 반드시 두툼한 장갑을 착용해야 낚시 원줄에 손이 다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요즘 낚시를 다니다보면 호루낚시를 다니는 이들을 많이 본다. 이들을 위한 안전낚시 요령 하나 알려드린다. 채비를 내리고 배의 속도에 맞추어 적정길이로 풀어지면 원줄을 배의 닻기둥에 묶는다. 그런 다음 바다방향 채비쪽으로 팽팽히 당겨진 원줄을 손가락 몇개로 걸어 몸앞으로 90도로 당겨 지탱한다. 줄삼치가 낚시에 걸려서 당겨진 원줄에 챔질힘이 느껴지면 줄을 바로 놓고 선장에게 신호를 한다. 배가 멈추고 선회를 하면 그때 안전하게 원줄을 잡아 당기면서 랜딩하면 된다.

 

 

  지깅낚시가 보급되면서 요즘은 메탈지그로 이 녀석을 낚는다. 10월 초순에는 부시리,방어 시즌이 시작되는 만큼 시기가 겹치면서 서로 섞여 낚인다. 부시리나 방어처럼 고급어종이 아닌 탓에 줄삼치는 주로 낚는 맛으로 낚시를 한다. 넘치는 파워가 낚시꾼들을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크기에 비해 정말 강력하게 저항을 한다. 힘만으로는 부시리 방어보다도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힘도 힘이지만 줄삼치 낚시는 부시리 낚시에 비해 정신이 사납다. 부시리는 낚시에 걸리면 일단 직진으로 바닥으로 머리를 처박는다. 암초를 찾아 숨거나 그 암초에 줄을 감아버린다. 그러니 초반 처박기만 못하도록 제압을 하면 끌어올리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줄삼치는 걸리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낚시를 물고 수면 아래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휘젓고 다닌다. 드는 힘, 당기는 힘이 약하면 오히려 줄삼치의 몸부림에 휘둘리다 낚시대를 부러뜨리는 경우도 있다. 튼튼한 힘으로 제압하고 있다해도 이 녀석의 어지러운 움직임은 옆의 다른 낚시 줄을 다 감아버린다. 그래서 옆에서 줄삼치가 걸리면 내리고 있던 채비를 바로 회수하거나 멀찍히 떨어진 곳으로 빨리 옮겨야 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낚시하는 시간보다 서로 엉킨 줄을 푸느라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야 한다.

   고등어과인 모든 다랑어 종류들이 그런 것처럼 줄삼치는 잡혀 올라온 후에도 그 성미를 못참는다. 낚여 올라오면 배 바닥이 깨져라 펄떡거린다. 그러나 금새 잠잠해지며 죽는다. 굵고 짧게 사는 것이 이 족속들의 공통된 운명인가 싶다. 

  죽으면 바로 부패가 진행된다. 그래서 이 녀석은 잡아올리자마자 제압해서 숨통을 끊고 피를 빼야한다. 아가미 뒤쪽으로 칼을 넣어 심장이 있는 가슴쪽으로 찌르면 바로 피가 쏟아진다. 꼬리 지느러미까지 잘라주면 더 빨리 피를 뺄 수 있다. 칼을 쓸 때는 줄삼치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에서 해야한다. 칼에 찔린 녀석이 마지막 힘을 쓰며 펄떡거리면 사방으로 피가 튀며 온몸에 뒤집어 쓴다. 심장을 찌른 후 꼬리지느러미를 자르고 선창에 집어넣거나 아니면 살림망에 넣어서 바닷물속에 던져넣는다. 5분 정도 있다가 피가 다 빠지면 건져내 바로 냉장보관을 한다.

 

 

  "내일 낚시 어떵허꽈? 복수전 한 판 해야 되지 안허쿠광?"

  금요일 저녁, 동생에게서 문자 한통이 왔다. 복수전이라 했다. 바다 물고기가 내게 원한 진것도 없고 피해를 끼친 것도 없는데 복수전이란다. 일전 두번의 주말 낚시에 허탕을 친 것이 동생에게 무슨 그리 큰 원한을 샀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물고기는 낚는 맛, 먹는 맛을 주었을뿐 우리에게 끼친 죄가 없다. 동생은 어떤 원한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체 없다.

  오전 조업을 끝내고 온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섰다. 오후 2시 썰물이 끝나고 들물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물때가 좋았다. 그런데 바람은 동풍인가 싶으면 서풍이고 조금 나가면 남풍이 불고 종잡지를 못했다. 보트 선수를 어디로 향하던지 파도가 바람에 휩쓸려 들어왔다. 바람과 파도를 피해 비교적 잔잔한 범섬 북쪽으로 보트를 대었다. 채비를 꾸리고 바닷속으로 던져넣었다. 몇번의 저킹에 바로 강한 입질이 왔다. 힘을 다해 올리는데 수면 가까이 뜬 녀석을 보니 70cm는 돼보이는 부시리다. 뜰채가 없던 탓에 낚시대채로 들어올리려는 순간 수면위로 뛰면서 바늘털이를 한다. 갑자기 휘어졌던 낚시대가 펴지면서 가벼워진다. 낚시바늘 매듭을 끊어버린 것이다. 

  지그를 교체하고 다시 저킹을 시작했다. 또다시 강한 입질, 옆에 있던 동생에게도 같은 입질이 연이어 터진다. 입질후 어지러운 움직임을 보아하니 줄삼치다. 놓친 부시리가 아쉽지만 그래도 입질만 받아도 고마운 일이다. 이후에도 입질은 수없이 이어졌다. 세시간여의 낚시에 50cm급 부시리 한마리와 '야드'라 불리는 새끼방어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줄삼치다. 갯수를 세어보니 모두 17마리.

 

  오랜만에 보는 손맛을 실컷 봤다. 온힘을 쓴 탓에 팔이 저려왔다. 일몰시간이 한 시간여가 남았지만 채비를 정리했다. 원한에 사무쳤다는 동생도 이 정도면 만족한 듯하다. 보트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낚는 일이 힘들었다 하지만 잡아온 후 장만하는 일은 더 큰일이다. 어머니는 올해 여름에만 '십이가스'를 백 마리도 더 잡는다고 했다. 그만큼 줄삼치 풍년인 해란 말씀이다. 어머니를 도와드린다고 팔 걷어부친 누님까지 합세해서 칼질을 하는데 한시간도 넘게 걸린다. 모두 장만을 하고 보니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누님이며 여동생이며 네오누이 모두 나눠서 챙긴다. 모두들 없던 시절 줄삼치의 맛을 아는 때문이고 줄삼치를 통해서 같이 먹고 같이 배고팠던 옛날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동네 어른들 몇이 모였다. 줄삼치와 부시리 회를 뜨고 매운탕에 배부른 저녁자리가 펼쳐졌다. 귀하지 않고 맛없다 하여 아무도 찾지 않는 줄삼치. 어부의 집에서는 나름의 맛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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