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아닌데도 요행을 바라다니 - 낚시 물때와 바람

  두드러기와 온몸이 가려운 알레르기 증상이 생겼다. 수술후에도 더디게 회복되는 다리신경도 불편인데 피부까지 이러니 짜증이 하루 종일 떠나지 않는다. 찌푸린 인상을 펴라는 집사람의 이야기까지 들으면 폭발하기 직전까지 간다. '누군 인상 쓰고 싶어 쓰냐고? 올해 들어 이병 저병이 들어왔다 나가며 몸에서 떠나질 않으니 그러는 거지.'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대학교 때 한동안 심취해 외우고 다녔던 불교경전중 보왕삼매론중 한 구절을 떠올린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젊은 때야 마음에 담아두는 교훈의 말씀이구나 했지만 갖은 병치레로 하루하루가 힘든 요즘에는 이 말씀도 헛것이 된다.

 

  바닷바람이나 쐬면 좋을까 싶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녀석과 회사에 미리 반차휴가를 낸 동생을 데리고 배낚시를 갔다. 아픈 허리로 무슨 배낚시냐고, 낚시를 가도 바람때문에 안될거라 극구 말리는 어머니의 말씀도 귓등으로 흘려듯고 집을 나온다. 사리물때라 그런지 간조시간대로 접어드는 바닷물은 포구 선착장 바닥쯤에서 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선착장과 수면과의 간격 때문에 뛰듯이 힘겹게 보트에 올라탄다. 미리 허리에 두른 복대를 다시 단단히 고정하고 엔진 시동을 걸고 포구를 빠져나간다.

 

  바람이 세다. 보트의 속력을 내니 보트의 선수에서 갈라지며 거칠게 퍼지는 물살이 조종석으로 튀겨온다. 바람을 맞서서 보트를 조종하던가 속도를 줄이던가 해야하는데 낚시 포인트까지 직선거리를 활강상태(전속력)로 가는 탓이다. 배 중간에 앉은 동생이 손짓으로 선수를 틀라고 하지만 무시하고 그대로 질주한다. '마음에 안들면 지가 레저조종면허를 따던가~'

 

  전날 미리 아버지께 확인해둔  범섬 포인트에 보트를 멈춘다. 낚시대 두 대에 인치쿠와 슬로우지그로 각각 채비한다. 아들녀석에게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타이라바를 체결해준다. 낚시가 시작됐다. 그런데 물살이 빠르다. 저녁시간대가 간조여서 만조 때 들어찼던 바닷물이 급격히 빠지는 탓이다. 보트에 닻을 내리지 않는다. 고정된 포인트에서 보다는 물살이나 바람에 이끌려 이동하면서 하는 편이 조과가 좋기 때문이다.

 

 

  9월 중순인 때라 막숙(법환)포구 연안에서의 낚시는 이른바 비수기다. 생미끼 낚시로야 쏨뱅이나 용치놀래기가 년중 잡히지만 지깅낚시에서는 다르다. 지깅의 대상어중에 9월에 잡히는 어종으로는 다랑어 종류의 줄삼치와 부시리 종류가 대부분이고 한 두 마리 운으로 얻어걸리는 참돔이 전부다. 낚시방송을 보면 이 시기 제주도에서도 다양한 어종들을 낚아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대부분 어군탐지기를 이용한 먼바다 포인트를 공략하는 것이다. 포구나 연안근해에서 하는 배낚시에서는 꿈도 꾸기 힘든 일이다.

 

  이 시절 연근해에 부는 바람도 낚시를 방해한다. 가을에 들어서면서 서귀포시 연안에는 보통 하늬바람(서풍)이 분다. 그런데 이 오후시간에는 샛바람(동풍)이 분다. 기상청에서 예보하는 바람은 상시로 부는 계절풍인 하늬바람의 세기만 예보할 뿐이다. 느닷없이 방향이 바뀌며 세차게 불어오는 샛바람은 예보가 없다. 6~8m의 풍속과 0.5~1m의 파고예보를 믿고 나갔다가 샛바람에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가을철 바다에 부는 샛바람은 한 번 시작되면 4~5일 간격으로 지속되고 늦게는10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이 바람은 주로 오후시간대에 집중되는데 낮 12시를 시작으로 저녁 6시까지 불어오다가 잠잠하게 그친다. 아침에 고요하게 잔잔했던 바다가 오후들어 일시에 하얀 포말로 뒤덮이며 파도가 세차게 일면 이 샛바람 탓이다. 그래서 가을철이 되면 오후 바다기상에 항시 유의해야 한다. 특히 파도에 약한 작은 배를 타는 경우에는 샛바람의 세기와 파도의 상태,높이를 수시로 체크하며 비상시 즉시 귀항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낚시를 해야한다.

 

  점점 강해지는 샛바람에 바닷물이 삼각파도를 불규칙하게 만들어내며 거칠어진다. 샛바람과 표면에서 치고오는 파도로 보트가 빠르게 서쪽으로 밀려난다. 물때 또한 낙조(간조시간) 때인지라 던져놓은 낚시줄이 이른바 연날리기식으로 바닷속에서 끌린다. 바람의 방향과 조류의 방향이 다르니 끌리는 정도가 심하다.

 

 

  120g 무게의 지그를 140g으로 교체했다. 끌림이 조금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저킹은 어렵다. 몇번의 내리고 올림을 반복하다가 아예 낚시대를 접었다. 바람이 멈추던지 간조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자는 판단에서다. 아들녀석도 재미가 없는지 낚시대를 보트 바닥에 올려놓고는 드러누워 버린다. 지칠줄 모르는 피싱머신 동생만이 바람과 물살의 정도에 따라 점점 무거운 지그로 교체를 하면서 여전히 슬로우지깅을 계속한다. 샛바람은 늦은 오후가 되면서 점차 잦아들며 파도도 잔잔해진다.그러나 입질은 여전이 없다.

 

  샛바람이야 예상치 못했다해도 이런 사리물때 간조시간에 배낚시를 온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예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아버지께서 작은 크기의 부시리와 줄삼치가 들어왔다는 포인트를 알려주시면서 만조시간 전후 아니면 손맛보기가 어려울 거라는 말씀도 덧붙여 주셨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나온 것이다. 더욱이 사리물때에 간조시간까지 겹쳤으니 입질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거친 샛바람이 부는 오후시간대의 낚시니 모든 조건들이 최악인 상황이다. 그래도 항상 낚시를 갈 때는 요행을 바란다. 아무리 시간과 계절이 맞지 않은 때지만 나에게만은 대어가 입질을 해줄 것 같은 희망, 이는 낚시인이라면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물이 가장 많이 들고 또 그만큼 많이 빠지는 때가 사리물때다. 물때란 바닷물이 하루에 2번씩 들고(만조) 나면서(간조) 이루어지는 물의 높낮이 이동현상이 15일을 주기로 반복되는 것을 이른다. 물때는 보름을 주기로 날마다 1물부터 15물까지 이름을 매기는데 조수간만(바닷물의 가득 찬 상태와 가장 많이 빠진 상태의 차이)의 차이가 가장 작은 음력 8일과 23일을 조금(15물)으로 하여 다음날 1물을 시작으로 조금(15물)까지 숫자를 하나씩 더해간다(제주도 물때 기준.다른 지방에서는 조금 다음에 '무시'라 하여 하루를 끼워놓고 14물때를 사용한다). 바닷물이 들고나는 차이가 가장 큰 사리물때는 음력 15일과 30일이 된다. 사리물때에는 만조와 간조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당연히 조류가 가장 세다. 더욱이 사리물때에 조류의 흐름과 반대되는 바람까지 더해지면 배낚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즉 썰물시간의 바닷물은 동쪽을 향해 흐르는데 샛바람(동풍)이 불면 그 바람을 맞은 배는 조류의 방향과는 반대로 흘러간다. 그러니 바닷물속에 드리워진 낚시채비는 수직으로 바닥에 닿지않고 조류에 따라 하염없이 흘러버리게 된다. 이러니 제대로된 낚시가 될 수 없다.

 

  간조시간이 가까워 갈수록 물고기의 입질은 점점 줄어든다. 특히 방어나 부시리등 회유성 어종들은 간조시간으로 접어들면서 먼바다로 떠나버린다. 그들의 먹이가 되는 작은 어류들이 간조류를 따라 이동하니 당연히 그들의 쫓아 이동하는 것이다. 완전한 간조시간에는 바닷물 흐름(조류)이 완전히 멈춘다. 이는 만조시간에도 마찬가지인데 조류의 흐름이 정지되면 한곳에 머물러 사는 정착성 물고기도 입을 닫는다. 그래서 간조시간에는 대부분 낚시(특히 배낚시)를 피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물때와 간조시간에도 배낚시를 나간 어쩔 수 없는 이유도 있다. 배낚시를 위해 타고 다니는 보트가 아버지의 모선에 달린 배라 모선이 오전 조업을 끝내고 포구로 돌아와야 보트를 이용할 수가 있다. 그러니 오후 시간때가 들물시간대던 썰물시간대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직장에 얽매인 탓에 주말에서야 낚시가 가능하고 보트는 오후시간만 허용되니 말이다. 사리물때에 만조 전후 2시간이 최고의 낚시시점인데 이런 날이 주말 오후에 들어맞는 날은 거의 드물다.

 

  간조시간이 끝나고 잠깐의 물돌이(간조만조 또는 만조간조가 뒤바뀌는 시간에 발생하는 조류의 회전)가 이어진 후 다시 낚시채비를 내린다. 그러나 해는 서편바다 수평선에 다가가고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질 않는다. 신중과 정성을 다해 저킹을 해본다. 딱 한 마리만이라도 걸려봐라, 속으로 수없이 바라보지만 역시 마찬가지. 지그는 물속에서 혼자만 춤추고 있다.

 

  해가 수평선에 걸쳐지기 무섭게 제모습을 감춰간다. 낚시를 접어야 할 시간이다.  낚시 걷어라는 말에 '딱 다섯번만 내리고 갑시다.'라는 동생의 애원에도 엔진시동을 건다. 이럴 때는 선장이 강력하게 지시해야 한다. 안전이 우선이지 아무리 낚시가 좋다해도 물고기 한 마리가 대수겠는가. 나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더 어두워지면 포구로 가는 길이 위험하다. 간조시간에는 간출여라 하여 평소 보이지 않던 물속의 수중암반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만조나 평상수위에서는 바닷물속에 잠겨있다가 바닷물이 빠지면서 모습을 드러내거나 낮은 수면 가까이 접해있는 암반들이다. 특히 사리물때 간조시간에는 평소물때보다 더 많은 간출여들이 솟아오른다. 오랜 세월 같은 바다에서 생활하는 어부들이야 지형이며 간출여며 경험적으로 익혀 어두운 바다에서도 제 항로를 찾는다. 하지만 연안지형에 익숙치 않은 초보 선장으로서는 사고의 위험이 크다. 특히 시각적으로 제한이 많은 밤바다에서 간출여에 부딫혀 보트가 침몰하는 경우에는 목숨까지 위태롭다.

 

 

  어슴푸레 밀려오는 어둠을 뚫고 막숙포구로 귀항을 마쳤다. 낚시중에도 거친 파도에 걱정이 되어 몇번을 전화하셨던 어머니께서 선착장에 나와 계신다. 밧줄을 매어 보트를 고정시키고 정박을 마친후 낚시짐을 들고 선착장에 올라온다. "바당 쎈디 괴긴 낚아져서~?" 거친 파도에 무얼 낚았겠느냐는 속마음을 뱉은 어머니의 말씀이다. "괴기랑마랑 뻥껄이우다." 뻥껄, 하나도 못했다는 제주어, 어부들에겐 치욕의 단어다. "경허난 가지말랜 안해서?" 패전장수인 동생과 나는 입을 닫는다.

 

  집으로 돌아오니 방에서 쉬고있던 아버지가 기척을 느끼고 나오신다. "뻥껄이우다, 뻥껄!" 어머니와 같은 말씀을 물어올 것이 뻔한데 미리 선수를 친다. "괴기 물리가 이시냐? 이 외살에, 오전이 물 들때 가사주" 만조시간이었던 오전에 가야지 사리물때 간조물흐름 시간에 고기가 물릴리가 있느냐는 말씀이시다. '뻥껄'의 아픔이 큰 동생이 버럭 소리를 낸다. " 오전인 아버지 자리 걸이레 가는디 낚시 가집니까?" 아버지의 오전 조업(자리돔 잡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후시간 밖에는 안된다는, 시간 맞춰, 물때 맟춰 못가는 상황을 뻔히 아시는 아버지가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는 항변이다.

 

  낚시에서는 수확이 있어도 술 한 잔이요, 없어도 술 한 잔이다. 낚은 날은 푸짐한 안주에 무용담을 섞어가며 밤이 깊어간다. 못 낚은 날은 아버지 그물에 걸려왔다 팔리지 못한 잔챙이 고기를 안주로 분함의 언어를 쏟아놓는다. 물때와 시간, 기상이 전체적으로 맞지 않아 애초부터 조과가 없을 날이었지만 이야기가 지속될수록 그러한 조건은 잊혀진다. 포인트 잘못이니 닻을 놓고 고정해서 낚시를 했어야 했는데 하며 우리의 실수로 귀결된다. 자연의 때가 아닌 사람의 실수탓이었다, 사리물때 간조든 어떤때든지 우리는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자신감인데 술은 이처럼 자연의 생리를 거스를 수 있다는 자만심을 블러온다.

 

  10월에 들어섰다. 2주째 주말이 다가온다. 물때를 보니 사리물때가 4일안으로 들어왔다. 주말기간의 간만조 시간은 오후 1~2시가 간조시간. 역시나 안좋은 시간대다. 어제는 오후에 강한 샛바람까지 불면서 바다를 뒤집어 놓았다. 이 바람도 역시주말을 거치는 3~4일 내내 불 것이다. 하지만 파도만 그리 세지 않으면 동생과 나는 보트를 띄울 예정이다. "두시가 간조니 이후부터는 물이 들어오는 시간 아닙니까? 딱 좋은 시간대입니다." 자연의 생리를 너무 자주 무시하는 동생의 말이다. 때가 아니면 요행을 바라지 말라는 교훈을 바다에서 얻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는 자연의 생리는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훌륭한 낚시인의 자세도 얻어버린 게 문제다.

 

  "10월 중순까지 오후에 배낚시 갈 생각 말라, 큰일 난다, 나도 낚시 갔다가 바람 하도 불고 바당 쎄서 들어와부렀져." 아버지의 보트보다 세 배나 큰 낚시어선을 운영하는 이웃집 어부형님이 있다. 기상탓으로 배를 돌리고는 아버지 집에 들려 술을 마시면서 우리들에게 '아서라' 하는 표현이다. 취중에도 낚시를 말리는 걸 보면 포기하긴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 머리속에는 자꾸 1m급 부시리가 범섬 동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요행수 생각에 참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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